조석으로 달라진 공기에서 가을의 예감을 느끼며, 툴프레스와 인도로 간 빠리지엔의 듀오 패브릭 기획전 《Encore Villa Lettre》을 앞두고 툴프레스의 공동 대표이자 아티스트 듀오인 두 분과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3년 전 첫 협업 기획전 이후, 두 번째로 진행한 두 브랜드의 협업에 대해 흥미로웠던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전시를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A. 안녕하세요! 저희는 자발적으로 혹은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며 레터프레스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툴프레스입니다. 2021년 <빌라레뜨>에 참여하고 다시 <앙코르 빌라레뜨>를 결심하기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흘렀어요.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기다려 온 것이 드디어 올해입니다. <인도로 간 빠리지엔> 의 도움을 받아 툴프레스에서 많은 사랑은 받고 있는 패턴 세 가지를 인도 패브릭으로 옮겨보았어요. ‘우리가 쓰고 싶어서 만든 것을 나눈다’ 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Q. 툴프레스는 카드, 부채, 캘린더, 한지 등을 만드는 자체 브랜드이자 외부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을 병행하는 것의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A. 아직까지는 좋은 점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서로 다른 일을 하며 떠오른 아이디어를 다른 일에 적용하고 있어요. 마치 일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어떠한 흐름이 생긴달까요. 내부의 일에서 생겨난 아이디어가 다른 일에 영감이 되어 주고, 외부 의뢰의 일을 위해 공부했던 지식이 새로운 제품 디자인에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요. 간혹 일이 몰려서 물리적인 시간이 아쉬울 때를 제외하고, 양쪽 일을 병행하는 것이 저희에게는 자연스럽고 바라던 일의 구조입니다. Q. 다양한 일을 하시다보니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이면서도 디자이너와 작가로 불리기도 하세요. 여러 호칭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호칭이 있으실 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아티스트 듀오’라는 표현이 참 좋았어요.A. 실장님, 대표님, 작가님 등 여러가지 호칭으로 불러 주시는데요, 사실은 어떤 것으로 불리워도 쑥스럽습니다. 저희 역시 정해진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에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지만요. (웃음) 간혹 새로운 의뢰인과 만날 때 “OO씨라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라고 부탁드리는데 서로가 어색해서 어느샌가 그 무엇으로 불리우고 있더라고요. 말씀하신 아티스트 듀오가 작업하는 두명이라는 뜻을 산뜻하게 알리는 것 같아 저희도 마음에 듭니다! Q. 이번 전시명은 《앙코르 빌라레뜨》입니다. 2021년부터 매 해 소개하던 빌라레뜨를, 올해는 녹사평의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선보이게 되었어요. 이번 패브릭 기획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패턴이나 작업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A. 툴프레스의 대표적인 패턴을 꼽으라면 〈Cherry & Cup〉과 〈Starry Night〉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정했다기보다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재작업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패턴이기에 안팎으로 그런 인식이 생겼어요. 이번에도 두 패턴의 활약이 컸고, 거기에 꽃무늬 패턴을 꼭 하나 넣고 싶었습니다. 지난 《빌라라뜨》 에서는 〈Proof of Love〉의 장미꽃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Blooming〉의 벚꽃입니다. 〈Cherry & Cup〉패턴이 코튼 슬럽이라는, 길고 짧은 섬유의 교차로 자연스러운 조직 위에 선보여진다면 〈Starry Night〉은 면 60수 특유의 부드러움을 머금고 있어요. 〈Blooming〉은 흐드러지게 핀 꽃을 돋보이게 하는 3중 거즈에 우드블럭으로 패턴작업을 해보았습니다. 모두 목화에서 비롯된 코튼 소재이지만 각기 다른 개성의 질감을 가지고 있어 비교해보시는 재미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수 년 전에 〈인도로 간 빠리지엔〉 대표님을 알게 되고 가장 많이 구입한 제품군이 이불이었어요. 여름에는 덮을수록 오히려 시원한 도하이불과 얇게 편 솜이 들어가서 부담없는 간절기 이불이 좋아서 주위에 선물도 여러번 했고요. 이번 겨울에 폭신하면서도 약간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화솜이 들어간 이불을 덮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 싱글과 퀸/킹 사이즈를 아우르는 2가지 사이즈, 패턴의 목화솜 이불을 야심차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더불어 지난 《빌라레뜨》 를 마치고 인도로 간 빠리지엔 대표님께 선물받아 몇 년간 입고 있던 누빔자켓을 두 가지 패턴으로 도전했고요. 빨아 입을수록 포근해서 저희끼리는 ‘Self Hug Jacket’ 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작은 소품으로는 티 매트나 코스터, 그리고 뜨거운 조리도구나 냄비를 잡을 때 유용한 홀더 등이 있는데 이번 전시 제품들은 우드블럭 패턴의 패브릭부터 바느질까지 모두 인도에서 제작되었고 재봉의 대부분이 손바느질이라 한층 짙은 인도의 향기를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아직 인도에서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는 제품들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인도 특유의 분위기를 위해 후회없는 결정이었어요. 만들어놓고 보니 ‘누가 좀 만들어주면 좋겠다’ 라고 저희끼리 생각했던 제품들이 와르르 나와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웃음) Q. 빌라레뜨는 툴프레스만의 일러스트와 패턴을 펼쳐보이는 바탕이 한지에서 패브릭으로 본격 확장된 전시이기도 해요. 우드블럭 프린팅 방식을 사용하는 인도 패브릭은 오래 마음에 품어오셨다고 하셨지요. 새로운 일러스트를 위해서 늘 새로운 틀을 만든다는 점에서, 우드블럭 프린팅과 레터프레스 기법이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이 두 작업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여기는 무엇인지, 또 작업하면서 느끼신 차이점이 있을지 궁금합니다.A. 가장 큰 매력이라면 똑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에요. 늘 저희의 기대를 뛰어넘어 깜짝 놀라는 즐거움을 주는 수작업의 매력에 수 년간 빠져있습니다. 레터프레스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인쇄의 옛 기법/기술 중 하나이지만 우드블럭은 인도에만 존재하는, 그들의 영혼이 담긴 작업이기에 중독의 밀도가 더 높은 것 같아요. 허술한 듯 숨결이 살아있는 제품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21세기에 저렇게 모든 것이 다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 얼마나 될까, 하고요. Q. 인도로 간 빠리지엔 대표님과는 3년 만의 협업입니다. 평면적인 일러스트가 우드블럭을 통해 도톰한 패브릭 위 패턴으로 구현되는 과정. 작업자로서는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인도 현지에서 제작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른 문화과 작업 환경, 업무 방식의 차이도 있겠고요. 전시를 준비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A. 기획단계에서부터 저희가 의도하는 바가 디테일하게 있는 편인데요, 인도 작업자들은 아마 저희와 생각이 조금 달랐나봐요. (웃음) 이 패턴과 저 패턴이 어울릴 것 같아 함께 재봉되기를 원했는데 다른 소재로 대체가 되어 있다던지 미묘하게 제품이 표현된 방식이 다르다던지 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난감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인도 작업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고 일을 시작한 부분이 있어요. 깜짝 놀랄 즐거움을 기대하면서요. 어떤 부분은 정말로 그렇게 되었답니다. 예를 들어 티 매트와 코스터, 팟홀더의 가장자리 핸드스티치는 인도에서 샘플을 보내온 것을 보고 ‘오 좋다!’ 라는 생각이 들어 결정하게 되었어요. Q. 올해 소개하는 패턴과 제품 중, 대표님이 소장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A. 진심으로 한 가지만 고를 수 없기에 저희는 ‘이번 전시의 아카이브이니까’ 라는 핑계로 모든 제품을 한개씩 (각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웃음) 여러분께 추천드린다면 이불이나 자켓 등 인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제품이 어떨까싶어요. 한 땀 한 땀 손으로 누빈, 목화솜을 넣은 이불이나 흔히 볼수 없는 인도 자켓은 평생을 두고 기분에 따라 넣어두었다가 꺼냈다가 할 때마다 기쁨을 줄 거예요. Q.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 분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저희를 알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기존의 한지에서 보셨던 패턴들이 패브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살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종이는 물에 빨아 쓸 수 없으니 두고 감상만 하셨던 것을 곁에 두고 쓰실 수 있다는 즐거움도 느끼시고요. 다양한 패턴의 한지와 엽서, 부채도 함께 전시해놓았으니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패턴이나 컬러가 주는 밝은 기운을 받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신다면 보람될 것 같습니다. Q. 얼마 전 서울에 작업실을 새롭게 마련하셨어요. 몇 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신 기간이 길어 서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때 소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쇼룸 운영 계획이 있으실지요. A. 당장이라도 쇼룸을 열어 ‘어서오세요!’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준비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 해요. ‘완벽하려고 하지 말자’ 라고 다짐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TWL 과 handle with care!) 온라인 숍도 거북이처럼 준비하고 있고요.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다던데 저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면 좋겠습니다. Q. 티더블유엘과는 2013년 시작된 인연이었으니 이제 두 브랜드가 함께해 온 시간이 짧지만은 않습니다. 작업의 범위와 방식을 확장해 나가는, 툴프레스만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무척 즐거워요. 앞으로 계획하거나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A. 예쁜 제품을 만들면 가장 먼저 선보이고 싶은 TWL과 벌써 십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어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인가 싶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제품이라도 우리가 만들면 조금 다른 것 같은 제품을 더 열심히 만들어 가짓수를 늘려보고 싶습니다. TWL 온라인숍에 물건도 더 소개하며 그간의 환대에 보답하고 싶고요. 다른 방향으로는 공연을 알리는 이미지를 작업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올해 몇 개의 공연포스터를 만들게 되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어요. 배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외에 그간 해보지 않았던 여러 분야의 작업과 마주치고 싶습니다. 저희가 애타게 일을 쫓는 것이 아닌, 일이 저희를 쫓아오는 상상을 하면 압박이 되면서도 즐거운 비명이 나올 것 같아요. (웃음) 툴프레스 & 인도로 간 빠리지엔 듀오 패브릭 기획전 《Encore Villa Lettre》은 2024년 8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