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너머로 보아온 작품을 통해 표정과 목소리를 어렴풋 짐작해왔던 스기사키 마사노리 작가님과 마침내 서면으로 긴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보통의 소재로부터 비범함을 발견하는 반짝이는 눈, 작업자로서의 성실함이 면면에 묻어나는 시간이었어요. 멀리서나마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봅니다. Q. 새해가 밝았습니다. 최근 일과는 어떠하신가요. 작가님만의 생활 루틴이 있으신가요?제 공방은 산속에 위치한 외딴집입니다. 그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에요. 조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제게 있어 최고의 기쁨입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Q. 전반적인 작업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재료(돌)와 영감(아이디어) 중 어떤 것이 우선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한 뒤 그에 어울리는 대상을 조각하시는 편인지 혹은 그 반대일까요?석재의 경우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사용합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돌이 괜찮다면 최대한 그 형태를 유지하려 하지만, 만약 돌의 모양이 좋지 않다면 조각을 통해 처음의 형태가 남지 않도록 합니다. Q. 오랫동안 공공 조형물이나 큰 규모 위주의 작업을 주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과 같은 작고 내밀한, 개개인에 집중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큰 규모의 공공 조형물 작업은 지금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작은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요. 상반된 크기의 조형물을 병행하며 만드는 것은 작업에 자극이 됩니다. 우러러보는 작품, 손 안에 쥐어 볼 수 있는 작품.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Q. 돌을 깎는 동안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의욕이 가득 차오릅니다. 손을 사용한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무념의 상태로 접어듭니다. 손이 제 마음대로 작품을 만들지요. 해가 질 무렵이면 완전히 소진되고요.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Q. ‘기도’ 시리즈 중 자기나 석회암을 연상시키는 흰 표면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무아지경이 되어 기도하는 모습. 그 모습에는 백(白)의 기조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Q. ‘moon’ ‘philosopher’ 시리즈는 돌의 고유한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인위적인 꾸밈 없이 드러나는 본연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이에요. 작품에 어울리는 돌을 찾기 위해 산과 강, 바다를 걷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를 가진 수많은 돌을 만나게 되는데, 돌이 먼저 자신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호소할 때가 있습니다. ‘Moon’과 ‘Philosopher’ 시리즈에 사용된 돌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매력 있는 돌이었습니다. 그런 돌에는 달이나 사람의 얼굴처럼 익숙한 형태를 주로 입힙니다. Q. 한편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여느 작품들과 달리 ‘동물친구’ 시리즈는 사랑스럽고 활력이 느껴집니다. 혹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시는지요? 이러한 작업의 계기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동물과 함께했습니다. 곤충, 양서류, 파충류, 어류, 조류 그리고 개, 고양이, 염소.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와 생활하고 있지요. 인체나 추상 형태와 마찬가지로 동물 역시 모티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것은 ‘모티브’ 그대로라기 보다는 ‘형태’와 ‘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님의 첫 전시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지요?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저의 개인전을 서울에서 열게 되어 무척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만든 작품의 형태를 통해 메시지는 이미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분들께서 언어를 초월한 감각으로 이를 느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계획하신 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올해 또한 매일 작품을 만들 것 같습니다. 몇 년 후에도 분명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2021년에는 작은 작품을 다룬 전시회 일정이 몇 가지 정해진 상태입니다. 옥외 기념비 작업도 예정되어 있고요. 이미 지나간 시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보다 오늘 하루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귀게 된 돌 - 스기사키 마사노리 조각전》은 2021년 2월 14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ch care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