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작품전 《어스름 나라에서》를 앞두고 오자크래프트 작가님들과 서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고지영 작가님과 듀오 전시를 준비하며 만든 기물과 그간의 작업 과정까지, 흥미롭게 주고받았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올해 초 TWL 온라인 저널을 통해 인터뷰를 해주셨지요? 같은 해 핸들위드케어 전시를 앞두고 다시 청한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안녕하세요. 지난 봄에는 5월에 있었던 도쿄 전시를 준비했구요. 그 이후로는 《어스름 나라에서》 전시 준비 작업을 하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Q. 오자크래프트는 ‘오자’와 ‘제비’ 라는 활동명을 가진 두 분이 운영하고 계세요. 오자크래프트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A. 오자는 도자 작업에서 디자인을 맡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고 형태를 만들고 생산을 위한 작업 동선을 구현합니다. 제품 외에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며 그것이 전시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영상과 전시를 위한 BGM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자 작업 외에는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캘리그라피를 쓰고 인쇄물을 위한 페이지를 디자인합니다. 제비는 도자기 전체 생산물의 시유와 재임을 맡고 있으며 생산 전반의 디렉션과 관리를 합니다. 거래처와 홈페이지, 쇼룸과 고객 등 외부적인 커뮤니케이션, 오자크래프트의 사진 및 영상 기획과 제작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개인 작업으로는 5월 도쿄 전시에서도 소개했던 아날로그 프린트 사진 작업이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타이틀, 《어스름 나라에서》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명 단편동화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슬프지만도 기쁘지만도 않은 정서가 느껴져서 제안드린 타이틀이었어요.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작업 방향을 생각하셨을 때 전시 타이틀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A. 오자 크래프트의 판타지는 동심에 있습니다. 어릴 적 설레던 기억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요. 그것이 동심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설레던 감정을 더듬어 재구성하는 것이 오자 크래프트의 작업입니다. 그 감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기억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스름 나라에서》 라는 제목은 이번 전시 작업 초반의 기획이었던 동화적인 판타지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판타지는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구름에 가려진 마음에 작은 온기를 전하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이번 전시는 고지영 작가와의 듀오 전시이기도 합니다. 개인전과 비교했을 때 다른 지점이 무엇인지,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A. 듀오 전시는 처음인데 고지영 작가님은 평소에 저희가 좋아하는 작가님이라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전시 오픈 2일 전 전시장에 기물을 전달하러 왔다가 고지영 작가님의 그림을 실물로 보고 감탄했어요. 작품 중에 초들이 올려져 있는 모빌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자마자 ‘저 모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강철선을 용접하여 만들고 제비 오브제를 달았습니다. 그것이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KO- Hanging〉입니다. 이후 고지영 작가님이 저희 전시 작품을 보고 제비 그림을 그려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놀랐어요. 저희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고지영 작가님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Q. 지난 인터뷰에서 오자크래프트의 시작은 마음을 위로하는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하셨어요. 전시를 앞둔 현재, 추구하는 작업 방향의 변화가 있으신지요. A. 개인적으로는 지난 5월 도쿄 전시 때부터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꽤나 오래 묵어있던 어떤 목마름이 제 안에서 터져 나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목마름의 정체를 찾는 과정중에 있어요. 이번 전시 작업은 그 전과 후가 믹스된 형태의 결과물 입니다. 새로운 작업은 저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을 시작으로 작업 과정부터 결과까지 자유 그자체 입니다. 그것은 ‘와비사비’와도 공통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와비사비를 거침, 비정형, 번짐, 부서짐과 벗겨짐 등 인위적인 부분이 최소화된 자연적인 결과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결국 ‘자유’라는 한 단어로 저에게 귀결된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렇게 자유로운 작업을 통해 작업이 전하는 ‘위로’ 를 조금 더 구체화하는 과정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 생각했던 위로는 그저 ‘위로를 주고 받는다'의 느낌으로 ‘어떻게?’의 방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막연한 것이었어요. 그 부분이 조금씩 발전, 진화해가는 느낌입니다. 위에 답변드린 것처럼 동심의 힘을 믿고 그것을 찾아가는 작업이 그렇습니다. Q. 이번 전시를 위해 촛대와 테이블웨어를 비롯해 고철을 접목시킨 오브제와 조명 등 다양한 기물을 작업하셨어요. 기존 작업과 차별화된 점이나 실험적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오자크래프트의 작업은 90% 이상이 슬립 캐스팅 기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험적인 새로운 시도로 투박하고 러프한 쉐입의 원형을 몰드로 만든 후, 굳어버린 흙 조각들과 슬립을 함께 섞어서 제작하였습니다. 솔리드 캐스팅의 변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주 무식한(?) 방법으로 최종 완성하기까지 실패율이 아주 높아 실제로 가마에서 여러번 폭발했어요. 학교 다닐 적 교수님이 보시면 크게 혼날 것 같은 방법인데, 반항하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재미있게 작업하였습니다. 동물 오브제는 마음이 가는 동물들의 후보를 만들어서 추려낸 아이들입니다. 지금은 아파트를 지어 많이 없어졌지만 파주에는 고물상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작업실 근처의 단골 고물상에 가서 고철조각을 골라 사와서 모아두고 있습니다. 동물 오브제의 스탠딩 지지대, 행잉을 위한 고리는 그렇게 아껴두었던 폐철 조각들을 조합하고 용접하여 만들었어요. Q. 전시작 중 말과 새 날개, 목마 오브제는 기존 백자와는 다르게 거친 질감이 느껴지고 백자 안쪽으로 검은 표면이 보이는 게 인상적입니다. 작업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아요.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새롭게 시작한 작업에 새로운 톤을 입히고 싶었고, 몇 개월동안 무광 백색을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11월 9일 머리속에 있던 딱 그 질감과 색감을 완성했습니다. 광택이 없는 담백한 순백색 아래 은근하게 어두운 흙이 비칩니다. 이것은 원래 저희가 가지고 있던 ‘그레이쉬 컬러’와 같은 구조이지만 음과 양처럼 반대편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물의 원형은 톱과 끌로 거칠게 조각하였습니다. 몰드안에 굳어 부서진 흙덩어리들을 채우고 슬립을 부어 속을 모두 흙으로 채우면 굳어진 흙덩어리와 슬립이 만나 건조되면서 자연스럽게 크랙과 부서짐이 생깁니다. 건조 후 어두운 흙으로 분장칠을 하여 초벌하는 과정에서 20%정도가 소성 중 폭발합니다. 살아남은 초벌 기물에 새로 만든 무광 백색의 유약을 담그거나 뿌려서 재벌하면, 유약이 얇은 부분은 밑에 흙이 자연스럽게 비치고 두꺼운 부분은 갈라지고 벗겨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심한 무광 백색은 아주 추운 겨울, 얼어붙은 맨 땅바닥을 닮았습니다. 이것은 자유와 겨울의 판타지 일 수도 있겠습니다. Q. 이번 전시를 위해 다섯 개의 곡을 만드셨지요. 전시 곡을 직접 만들게 되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A. 전시에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은 전부터 해왔던 생각입니다. 저희의 작업에 남의 음악을 빌려 사용한다는 것이 가끔은 과분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단순하고 담백한 BGM을 만들어 전시에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항상 부족한 것은 시간과 용기였죠. 이번 전시에 제비 작가가 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어 힘내서 작업해 보았습니다. 아주 단순한 구조의 조용한 피아노 곡으로 몇 곡에는 파주에서 녹음한 앰비언트를 배경으로 삽입하였습니다. 파주의 겨울은 혹독할 때가 있어 힘든데 파주의 철새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음악에서 들리는 새소리는 파주의 기러기 소리입니다. 어스름 나라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한 일들이나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A. 내년 4월에 국내에서 전시를 계획하고 있어 그 때 또 새로운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도자 외에도 나무, 돌, 유리, 쇠 등 다양한 소재로 더 자유로운 작업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고지영&오자크래프트 작품전 《어스름 나라에서》는 2023년 12월 31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