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우주 

김선갑 · 남미혜 작품전


심연의 빛, 자개를 세공하여 호젓하고도 온전한 우주의 품을 표현한 김선갑&남미혜 두 작가의 작품전을 소개합니다.

전통과 시대에 구애 받지 않은 나전칠기 공예를 선보이며 50여 년간 작품의 지평을 넓혀온 김선갑 선생님, 자개의 형형한 빛 조각으로 나전의 새로운 인상을 빚어낸 남미혜 작가님. 스승과 제자라고 간단히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다른 작업 이력과 방향을 가진 두분은 6년 전 자개라는 공통분모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 자리에 모아본 두분의 작품에서는 나전의 광채만큼이나 여백이 주는 고요가 비중 있게 다루어 집니다. 꽉찬 화려함을 한 겹 걷어냈을 때 빛나는 방점으로 존재하는 나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합니다.

김선갑 

18세에 공방 입문 후 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 고故 김태희 선생으로부터 나전옻칠을 사사받았습니다. 2013년 《전통의 선율》, 2009년 《옻칠회화전》 등 8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1983년부터 2010년까지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지난 50여 년간 작품 활동에 매진해오고 있습니다. 제30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제2회 한국 옻칠공예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남미혜 

국민대학교에서 실내디자인학을 전공하고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으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장식과 문양, 동아시아권의 개화기와 맞물려 나타나는 조형적 변화를 연구해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취미사(趣美社)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구자, 디자이너, 제작자, 기획자,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Q. 김선갑 선생님께서는 5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나전을 시작하겠다고 처음 결심한 순간이 떠오르시는지요. 

A.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네가 그림을 잘 그리니 나전을 배워보면 어떻겠냐 하시더군요. 그렇게 공방에 들어가 수련하기 시작한 게 18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자개를 그림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더 생동감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고요. 그러다 30대가 되었을 때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꿈은 컸는데 작업이 성에 차지 않더군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이론을 공부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기술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장인이 아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그때부터였고요. 


Q. 스스로를 명인이 아닌 작가이자 화가로서 정체화하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수묵화, 동양철학 등을 꾸준히 공부하신 점도요. 

A. 20여 년 동안 수묵화를 그리러 전국 방방곳곳을 다녔습니다. 40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폐차했지요. 소나무가 뻗어나가는 형상, 이파리의 생김새 등을 살피며 자연의 섭리를 배웠습니다. 나전은 미술사적으로 학문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기에 저 스스로 공부하며 나름의 이론을 정립해나가야 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자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구나, 화가구나’라는 생각이 점차 확고해졌습니다. 인간문화재와 명장으로 지정하려던 것도 거절했고요. 장인이 기능보유자라면 작가는 기능을 뛰어 넘는 사람인데, 제가 바라는 것은 작가였습니다. 


☞ 김선갑 선생님 대담 전문 보기

Q. 남미혜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자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A.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애정을 담아 자개를 갈고, 닦고, 문지르는 일이에요. 그러다보면 자개의 오묘한 온도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직접 만들어보기 전까진 몰랐던 사실이에요. 어느날은 제 체온이 자개에 스며들어 따스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날은 바다의 시원한 기운이 전해지고요. 계속해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자개의 이러한 촉감과 은은함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Q. 작업 과정 중에 가장 즐거운 때는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A. 자개를 올리기 전 한참 동안 나뭇결을 바라보는데 어느 곳에 달빛이 있을 때 가장 공간적인 느낌이 날까, 나뭇결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위치가 어디일까 고민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자개를 올릴 자리를 결정할 때까지 천천히 작업을 이어가지요. 때로는 이 과정에서 이상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울컥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고민했던 것에 대한 답을 주는 듯한 장면들이랄까요. 자개를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얹은 뒤 10일 쯤 말렸다가 물에 불려 벗겨내는 순간 역시 희열이 있습니다. 자개가 반짝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이 마치 발굴과도 닮았고요. 


☞ 남미혜 작가 대담 전문 보기

밤이 길고 짙은 만큼 빛이 깊고 선명하게 몸을 숙여오는 계절입니다. 긴 터널과 같았던 한해의 끝에 두 분이 그려낸 빛의 궤적을 천천히 따라 걸으며,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도 작은 반짝임이 스미길 기대합니다.

2020년 11월 20일 - 12월 6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 43 1층 Handle with Care

02-797-0151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포스터 디자인: 이재민

작품 촬영: texture on 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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