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놀이

허상욱 작품전


봄 햇살이 따사로운 4월, 도예가 허상욱 작품전 《분청놀이》를 시작합니다.

☞ 전시 작품 자세히 보기

이번 전시는 30년 가까이 분청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옛 사기장들을 향해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보내는 헌정 전시이자, 자유로운 분청의 멋을 제안하는 자리입니다. 굽 높은 접시와 기념비 형태를 모티브로 한 신작과 주요 기법인 ‘박지’를 중심으로 은채, 청화를 더한 기물을 선보입니다.

허상욱

학부 시절 분청 사기의 매력에 눈뜬 이후 3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오롯이 분청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다양한 기법과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특히 박지 기법을 오랜 시간 연구해 왔습니다. 2022년, 116개국이 참가한 《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의 최종 3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높은 굽접시와 기념비를 모티브로 한 기물을 비롯해 스케일이 큰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전시작의 모티브에 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봄이 되면 학창시절에 풀이 돋기 전 옛 도요지를 답사하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너른 들에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사금파리들. 완형에 가까운 조각을 주워 보리라 부푼 기대를 안고 들판을 탐색하며 반짝이던 눈빛들. 파편을 통해 옛 사기장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봄이 오면 이름 모를 옛 사기장들을 기억하고 존경심을 담아 예를 올리는, 마음으로부터의 의식을 드리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옛 분청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사기장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한편으로, 근래에는 푸른색에 살짝 발을 담구고 있습니다. 하루 중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이로운 순간의 색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꿈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색깔이기도 합니다. 바위에 자유롭게 흔들리는 풀과 용, 호랑이, 게, 물고기, 모란 등을 푸른색과 어우러지게 표현했습니다. 

Q. 기물에 그림을 그리실 때 특별히 애정이 있거나 그릴 때 즐거운 소재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물고기도 모란도 새도 파초도 모두 귀하고 애정하는 소재죠. 하나 고르라면 호랑이가 아닐까 합니다. 《상상동물도》라는 전시를 준비하며 전통 속의 다양한 동물들을 그렸었는데 그중 호랑이가 재밌게 다가왔어요. 아들이 호랑이 띠라서 괜스레 더 정이 가고 그릴 때마다 즐겁습니다. 어릴적 모습을 투영해서 그리는 것들도 종종 있구요.


이번에 그린 그림 중에 게 그림이 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전라도 광주 지역의 분청 도편 중 게 그림이 있는 파편을 보게 됐어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여러모로 그려 봤는데 이게 예상 외로 너무 어렵더군요. ‘선 몇 가닥으로 어쩜 저렇게 마음속에 폭 들어 오게 그려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단순한 게 참 어렵습니다. 종종 시도하다 보면 사랑스럽고 예쁜 게가 나타나겠죠. 


Q. 때로는 박지 분청에 은칠이나 청화를 더하기도 하시고 기존 청화백자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세요. 이번 전시작 중 은채와 청화 기법을 더하신 작업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A. 은이라는 재료는 금속성이긴 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Silvery'하면 왠지 시적인 느낌도 납니다. 무엇보다 분청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붓질을 느낄 수 있고 음영도 맛볼 수 있고 약간의 농담도 만들 수 있고,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죠. 그런 은이 흰색 화장토와 푸른 청화 또는 검붉은 철화를 만나면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타원 원통형의 단순한 형태에 청화 파초와 은의 조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Q. 작가님의 대표 기법인 ‘박지’는 백토가 발린 기형 표면에서 배경 부분을 긁어내는 방식이지요. 안개가 서린 듯한 질감은 봄 아지랑이나 따뜻한 햇볕을 받은 흙의 감촉처럼 포근한 분위기를 띕니다. 작업을 통해 추구하시는 분위기가 있는지 혹은 어떤 느낌을 염두에 두시고 작업하시는지요.

A. 바탕이 되는 짙은 흙과 하얀 화장토, 이 두 가지의 조화로움을 가장 크게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림을 주로 그리다 보니 물론 그림의 소재나 표현 방법도 중요하긴 하지만, ‘배경이 되는 여백을 어떻게 남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얀 그림과 짙은 배경의 경계도 싹둑 잘려나간 것처럼 명확하게 구분 짓기 보다는 흘러가듯 서로가 자기 영역을 살짝 양보하는 듯한 표정으로 남겨둡니다.


Q.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 분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요즘은 많은 분들이 공예를 참 잘 즐기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 속에서 놀이하듯 즐기고 계시다는 거겠죠. 늘 그렇지만 이번 전시도 아시다시피 어려울 것 없는 편안한 분청 전시입니다. 도자기의 몸짓과 표정들 즐겁게 살펴 보시고 시간 여유 되시면 근처의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옛 분청의 이야기도 더불어 살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백 년 전의 사금파리를 간직하는 마음을 놀이하듯 즐겁게 풀어낸 분청 사기를 통해 각자가 지켜나가고 싶은 소중한 의미를 떠올릴 수 있기를, 분청 고유의 매력을 만나는 자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 보기 

2024년 4월 5일 - 4월 21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0나길 34, 4층

070-4900-0104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그래픽 디자인: 이재민

식물 연출: 보타라보 정희연

프로필 사진: 백현경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