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절정을 앞둔 어느 날, 소사요와 뷰로 파피에 작품전 《꽤 짙은 기억》 을 앞두고 문지윤 아트디렉터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소사요 김진완 작가와의 우연한 첫 만남부터 깊어진 인연을 따라 폭넓게 확장된 작업까지, 흥미로웠던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저는 공간 기획 및 연출팀 뷰로 드 끌로디아와 공예 기물을 소개하는 뷰로 파피에를 이끌고 있는 문지윤입니다. 인문학적 사고와 서사를 소중히 여기며, 공간의 페르소나와 연결된 사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짓고 맺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15년 전에 일을 시작한 이후로 매번 제 이름 앞에는 Listener & Writer 를 새기곤 하는데 우리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우리의 언어로 다시 적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Starer 라는 단어를 더했습니다. ‘눈길을 모아 곁의 사물들을 응시하는 자’ 라는 역할을 자처하면서요. Q. 이번 전시는 뷰로파피에가 오랜 인연을 함께한 소사요와 함께 선보이는 도예전입니다. 소사요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A. 2018년, 2019년에 이천시청 공예팀의 의뢰로 도예가 25명의 컨설팅을 맡아서 디렉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참여하셨던 작가님이 소개해 주셨어요. 친구의 작업이 정말 좋은데 한번 만나서 보고 의견을 나눠줄 수 있는지 부탁하시면서요. 그 날 소사요 선생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기억이 수 해가 지나도 여전히 선명해요. 종일 세 분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작업을 살펴보고 방향을 상의하느라 이미 어두운 밤이었고, 대화를 많이 나눠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상태라 처음에는 고사를 했어요. 그런데 ‘어쩐지 오늘,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작업실을 방문하고자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검박하면서 필요한 것들만 있는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기물들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고, 만져보기도 전에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질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접하지 못한 기물의 비례와 감도가 눈 앞에서 넘실대면서 제 마음도 일렁이는 것을 느꼈어요. 그 날 밤,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 만나지 못했을 세계를 앞에 두고요. Q. 소사요와 몇 번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뷰로파피에와 소사요는 디자인과 쓰임을 함께 이야기하고 새로운 기물을 만드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미감을 공유하며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구현하는 관계는 단순한 기획자와 공간 운영자, 아티스트의 그것과는 달라 보여요. 이번 전시는 어떻게 준비해 오셨는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A. 공간 연출이라는 본업의 리듬이 빠른 편이고 큰 조직이 아니기에 공간 기획과 구성, 기물 개발과 유통 등이 팀 내부에서 긴밀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에요. 소사요 선생님은 백자, 청자, 분청 작업을 오랫동안 해오셨고, 제가 뵈었을 당시에는 흑자 차도구에 집중하고 계시던 때여서 처음에는 작업하신 기물들을 어떠한 여과 없이 소개하는 방식이었어요. 이후 선생님의 작업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느끼며 상공간을 위한 제작 기물, 뷰로 파피에만을 위한 차도구 등의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소지와 유약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 도자 기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는 있으나 비전공자인 제가 마음이 앞서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들을 말씀드리곤 했어요. 선생님은 제 이야기에 인내심을 갖고 귀 기울이시며 소지, 유약, 소성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셨어요. 하나의 기물을 통해 배움과 성장이 가능하도록 서두르지 않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해를 넘기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 가마에서 나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물에 관한 책임에 대해서도 환기 시키면서요. 일을 시작한지 15년이 가까워지는 동안, 쉽게 맺어지기도 하고 어렵게 마음이 떠나기도 하는 인연 중 유독 선생님과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고 되새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짚어봅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선생님이 갖고 계시는 작업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타성에 젖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매일 흙 앞에 물레 앞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세요. 대단할 것 없다며 좋아하는 것을 그저 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 하시는 모습에서 저 또한 제가 일을 대하는 자세를 찾고자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머무는가에 따라 확장될 수 있다고 여기면서요. Q. 전시 타이틀인 《mémoires et mélodies sombres/ 꽤 짙은 기억》을 제안해 주셨을 때 전시작의 조금씩 다른 농담과 실루엣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을 지으며 떠올리신 것들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A. 그간 종종 소사요 선생님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검은 빛깔’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어요. 외부에서는 뷰로 드 끌로디아의 장점으로 유연하게 저희만의 팔레트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것을 꼽습니다. 그 팔레트에서 검은 색이 우선시된 적은 거의 없고 개인적으로도 검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제 삶에 운성처럼 떨어진 것이 소사요 선생님의 흑자 기물이에요. 《꽤 짙은 기억》이라는 전시 타이틀은 우리가 기물을 만드는 이에게서 기대하고 찾는 세계와 그 속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 그렇게 세상에 나온 기물과 맺는 인연과 또 다른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빛과 음이 소거된 깜깜한 침묵의 방에 찾아와 음을 붙여주고 말을 더하면 그것이 잊히지 않는 노래가 되는 것처럼, 결국 사물에 대한 애정은 잠시 소유하고 대부분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드는 이와 그 것을 지켜보는 이, 소유하며 누리는 이들이 서툴지만 함께 부르는 합창과도 같고요. 몇 년 동안 소개한 소사요 선생님의 기물들을 품고 간 친구들이 여행을 갈 때 꼭 챙겨가는 찻주전자, 아침 식탁에 올리는 접시와 저그, 기쁜 날 케이크를 위한 굽접시… 이게 노래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Q. 이번 전시작은 모두 질감이 독특한 흑색 자기입니다. 글로시한 표면이 아님에도 음영과 입체감을 품고 있는 듯한 표면이 인상깊었어요.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A. 표면의 흑색은 별도의 유약이 입혀지지 않는 흑토 무유의 상태이고 말씀하신 음영과 입체감은 오로지 연마 작업으로 얻은 질감이에요. 오히려 성형과 소성 이후의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중요한 단계이기도 해요. 그 과정이 더 짙고 어두운 흑색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느껴져요. 시간적인 제약으로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려고 하면 원하는 질감과 색이 나오지 않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Q. 기물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보자면, 작업이 절제된 형태이면서도 동양이나 서양 한 쪽의 특정한 분위기를 띄지 않는다고 느껴졌어요. 정제된 선의 모던함이나 고전적인 분위기와도 다른 서정성은 뷰로 파피에가 추구해 온 미감이자 지향이기도 해요. 기물 작업에 들어가기 전 스케치 과정을 거칠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A. 백자와 분청의 경우 선생님이나 저희 모두 고백자와 옛 분청의 원형을 좋아하고 따르기에, 흑색 자기가 조금 더 우리와 가까이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어떠한 시대를 특정하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동양 서양의 구분 없이 그리고 일반적인 쓰임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기물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식으로도 소용이 있을만한 형태를 늘 생각해요. 대개 컵은 어느 정도 사이즈여야 대중적이고 판매도 잘 된다는 데이터는 저희에게 크게 작용하지 않지만, 기물 스스로의 비례감이 중요하고 그에 따른 다소 불편한 행위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만한 미감을 찾고 있어요. 가령 〈한 손의 잔〉은 병아리 저그에 차나 커피를 채워 여러 번 나눠서 마실만한 조그마한 잔인데, 저희는 작업실에서 그렇게 번거롭고 특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즐기고 있죠. 잔의 사이즈를 비율만 늘려서 커진다고 하면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위한 실용적인 컵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꼭 우리가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형태에 대한 영감은 국적에 상관없이 유물에 관한 자료도 많이 보고,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도시 환경에서도 찾고, 잘 만들어진 떡이나 색이 고운 과일 정과 등을 보면서도 ‘무엇을 닮은 것이 무엇을 담을 것인지’ 에 대해 상상하며 자유롭게 얻고 있어요. Q.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 분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소사요 선생님의 흑자 기물이 제 마음을 두드린 날 이후로 선생님의 가마가 열릴 때마다 걱정없이 설레는 마음만으로 달려가던 계절뿐이었어요. 그만큼 선생님의 밤낮이 성실하고 진지하고 다정하면서도 박력 있게,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물들을 보고 또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소사요와 함께 계획하거나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신지요.A. 이번 전시 한 켠에 미리 보여드리려는 작업이 있어요. 흑자 기물과도 어울리면서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을 입힌 테이블웨어 라인입니다. 올해 말 정식으로 런칭 준비 중인데 핸들위드케어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하게 되었네요. 소사요&뷰로 파피에 작품전 《꽤 짙은 기억》은 2024년 8월 9일부터 8월 25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