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초입, 금속공예가 고희승과 유리공예가 이지은의 듀오 작품전 《부드러운 틀》을 앞두고, 고희승 작가와 서면으로 전시에 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손 위의 장신구부터 가구, 공간으로 확장한 금속작품과 듀오 전시를 준비하며 협업한 기물, 그간의 작업 과정까지 차분히 주고받았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 환경 속 사물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와 소재를 채집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장신구를 통해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신구 작업과 맥락을 같이 하는 오브제 작업을 함께하고 있어요. Q. 서울 대조동에 작업실을 두고 계세요. 작업실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본인만의 루틴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A. 늦은 오전 작업실에 도착해서 차한잔을 마시며 전날 미리 메모해둔, 오늘 해야 할 작업을 구상합니다. 작업을 시작해서 계획대로 진행하지만 막상 계획대로 되지 않을때가 많아요. 머리로 계획했던 일이 손을 움직이면서 딴 길로 빠질때가 많거든요. (웃음) 또 그때 재밌는 작업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날 계획한 일을 완료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정시에 출근하는 편은 아니라서 외부 일이 있을때는 작업실에 가지않아요. 그래서 작업을 하지 않는 날에는 작업의 흐름을 끊기지 않으려고 머리 속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한마디로 이런저런 궁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또 작업물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미완성 과정에 있는 작업을 집으로 가져가서 수시로 살피고 바라보는 습관이 오래되었어요. Q. 이번 듀오 전시에서 서로 다른 재료인 유리와 금속의 대비가 주는 물성의 차이를 감상할 수 있는 한편, 비정형적인 형태가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공통 분모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두 작가님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A. 2인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두 작가의 작품이 균형을 맞추며 이루는 조화입니다. 기본적으로 유리와 금속은 같이 있으면 잘 어울리면서도 이질적인 재료여서 서로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갖는 지점도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비정형의 형태, 매트한 질감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공통 지점이 있어 같이 놓일 때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금속의 무거운 느낌이 유리의 밝고 투명한 물성과 함께하면 경쾌한 분위기로 자리잡을 것이라 상상하며 작업했고, 유리 작업과의 균형을 고려해서 금속의 색을 은, 금색, 검은색 정도로 절제했어요. Q. 두 작가님의 작업 기법 중 하나인 캐스팅(Casting) 기법은 본래 균일한 형태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두 분의 경우 캐스팅 틀을 하나의 손처럼 사용하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정형적인 형태의 의외성을 살린 작품들은 손의 지문을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캐스팅 작업 방식과 추구하시고자 하는 방향이 궁금해요.A. 저에게 캐스팅 기법은 작업하는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에너지를 기록하는 수단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제 상태에 따라 손 힘의 세기나 속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질감과 형태가 달라지기에, 작업 하나하나가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를 붙잡아 두고 싶어서 그대로 복제가 가능한 캐스팅 기법을 쓰는 것 같아요. 사실 제 작업은 캐스팅 전에 원본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해요. 원본은 점토 같은 무른 재료를 만지며 나올 수 있는 형태들에 집중하고 이 과정 속에서 예민하게 관찰하고 우연에서 나오는 결과를 포착하기도 해요. 점토가 금속으로 바뀌는 캐스팅 과정에서 나오는 의외의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Q. 20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주얼리 작업을 해오셨어요. 자유롭고 독특한 디자인인데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착용해볼 때 더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무게감 또한 무척 절묘하고요. 오랫동안 신체에 사용하는 주얼리를 만들게 된 원동력, 이번 전시로 확장되는 지점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작고 밀도있는 물건의 응축된 힘과 섬세함을 좋아하고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신구가 표현의 대상이 되었죠. 특히 반지는 손가락에 끼고 촉감을 직접 느낄 수 있고, 다른 장신구와 달리 타인이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착용자 자신이 바라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반지는 누군가의 손에 전해지고 착용하면서 길들여지는 모습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 부분은 반지에서 확장된 사물들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Q. 기존에 작업해오신 주얼리에서 나아가 가구에 고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 손잡이(Knob)와 벽에 고정할 수 있는 걸이(Hook)를 선보이셨어요. 신체 위 장신구가 소가구로, 지형지물 위로 확장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업하시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A. 오랫동안 반지를 만들면서 반지를 착용하지 않을때 머물 반지의 집,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확장되었어요. 장신구에서 공간의 물건으로 표현이 확장되면서 무게에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었어요. 손 위의 장신구가 가지는 무게의 범위보다 훨씬 자유롭잖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 저울의 추를 닮은 묵직한 문진도 만들었구요, 가구에 달리는 손잡이 역시 잡고 당기는 행위를 통해 기분 좋은 촉감을 느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황동 손잡이와 걸이의 경우, 형태와 디테일이 모두 다릅니다. 서랍장의 칸마다 모두 다른 손잡이를 매치하니 그전과 가구의 분위기가 사뭇 바뀌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무표정인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웃을 때 일순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처럼요. 황동 손잡이 작업을 완성한 뒤, 가구나 벽에 셋팅하시고 나서 받으신 느낌이 궁금합니다. 사람의 몸에 착용하는 주얼리를 작업하실 때와는 차이점이 있으셨을 듯 해요. A.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몇가지 손잡이가 탄생되었습니다. 완성되었을때 얼른 셋팅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죠. (웃음) 벽에 고정해보고 서랍에도 칸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같거나 다른 모양으로 달아보니 옷의 단추처럼 그 공간과 가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공간의 포인트가 되는 장식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졌어요. 물론 가구 손잡이로서 불편함이 없는지 벽에 고정하는 걸이로서 길이는 적당한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장신구는 신체가 움직일때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의 사물은 장신구보다 정적인 사물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고요하게 바라보며 사색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한편 고희승 작가님의 실버 플레이트, 보울, 스푼 등은 일반적인 식기와 비교했을 때 오브제의 인상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디자인하실 때 가장 고려하신 부분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A. 제 접시와 볼은 반지와 함께하는 오브제 개념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닥이 안정적으로 있기보다는 뒤뚱거리는 모습을 갖기도 합니다. 얇거나 두꺼운, 미세하게 다른 두께를 가진 은(silver) 그릇들은 깊이도 다릅니다. 무엇을 담을지 상상하게 만들고, 빈 공간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건더기를 거르는 구멍이 뚫린 스푼과 손의 힘을 빼고 차를 저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만든 가녀린 스푼도 있어요. 또 아기가 이유식을 먹을 때 쓸 수 있는 오가닉한 디자인으로 만들었어요. 옷의 솔기가 없어 입었을 때 편안한 것처럼 스푼으로 음식을 떠서 입 안에 넣었을 때 매끄럽고 좋은 촉감을 느끼도록 하나의 판에서 성형해 이음새 없이 완성했습니다. Q. 이번 듀오 전시에서 특별한 협업 제품을 만드셨어요. 황동 손잡이가 달린 유리합과 황동 인센스홀더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유리 트레이인데요. 전시를 위해 함께 기물을 구상하고 제작하시면서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작업과정과 마음가짐 모두 개인작업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셨는지요.A. 사실 협업을 할때는 호기심, 기대감과 함께 조심스러운 마음이 공존해요. 두 작가의 생각을 맞추고 작업에 잘 스며들어서 하나의 좋은 작업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행착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늘 있죠. 각자의 상황도 다를테니 서로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역이 가깝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소극적으로 문을 두드렸던거 같아요. 전시 준비 후반부에 시작된 협업이 시행착오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Q.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 분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우리 주변에 작고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사물들에 대한 관심과 그 가치를 되새기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너무 심각하지 않고 때로는 재미있고 유머스럽게 다가가기를 바래봅니다. 핸들위드케어 갤러리의 이름에 맞게 섬세하게 살펴주시고 애정을 갖고 오래 머물며 찬찬히 봐주시기를… Q.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한 일들이나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A. 저는 평소에 다양한 색을 많이 쓰는 편이기도 해서, 이번에 전시에 소개한 손잡이나 문진들을 만들며 금속이 아닌 다른 소재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 손잡이가 필요한 공간과 가구에게 짝을 맞춰주는 일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고희승 & 이지은 작가의 듀오 작품전 《부드러운 틀》은 2024년 6월 2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