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1월의 초입, 작품전 《백수천경 白樹千景》을 앞두고 박용태 작가님과 서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만든 기물과 그간의 작업 과정까지, 흥미롭게 주고받았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년 5월 핸들위드케어에서 선보인 전시 이후 1년 반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늘 그렇듯 작업을 중심으로 돌아간 일상이었습니다. 작업적으로는 지난 전시 이후 새로운 작업을 전개하며 여러 시도도 해보고, 재밌고 흥미롭게 보낸 것 같습니다. Q. 재료 수배와 성형, 소성 모두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계세요. 올해 전시작에는 특별한 나무가 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관련한 에피소드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소나무는 귀하기도 하고 건조기간이 필요해 여러번 소성할 만큼을 미리 준비해둬야 합니다. 기존 장작을 다 소진하고 개인적인 사유로 나무들이는 일을 미뤄둔 차에 전시 준비를 위한 장작을 급하게 마련해야 했습니다. 여름 이후 주문한 곳에 문제가 생겨 소성을 한 달도 채 안 남기고 나무를 못 받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전에 거래했던 지역의 목재소를 찾아갔습니다. 여러 소나무 더미 중 사장님 본인이 한옥을 지으려고 마련해두셨다가 건축이 미뤄져 한옥목재로는 때를 놓친 잘 마른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들을 흔쾌히 내어 주셨습니다. 껍질이 제거된 살좋은 소나무 장작을 구하게 되어 전화위복이 되었죠. 이번 전시 작품을 위해 한옥 한 채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Q. 전시를 앞두고 고성에서 보내주신 기물 사진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면 多面 형태의 기물이 빛을 받아 환한 면과 자연스럽게 음영이 진 면이 대비되는 사진이었어요. 올해 전시에서 다면 기법을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전개한 기물을 만나볼 수 있는데, 작업 동기가 궁금합니다.A. 저는 작품과 도구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철학이 기물의 카테고리에 따라 분별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빛과 시선에 따라 나타나는 백자의 다양한 모습을 느꼈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쓰임이 있는 기물들은 사용처 자체에 감상이 갇혀있다 보니 이러한 의도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곡률적인 기교를 줄이고 평면적으로 직관성을 부각해 여러 비율로 면이 돋보이는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다면 작업들은 백자 표면의 빛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Q. 작년 인터뷰에서 ‘백’이 지닌 ‘무한색’에 대해 말씀해주신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백자는 흙과 유약, 소성하는 날 불의 흐름 등의 총합으로 회백, 홍백, 청백, 황백, 설백처럼 다양한 색이 공존한다는 점이요. 전시작 중 〈The Captured (2023)〉는 이런 천광요의 백자가 지닌 정체성을 상징하는 작품처럼 여겨져요. 작업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다면 작업의 의도와 시도 계기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새 작업인 〈The Captured〉 시리즈는 더 확장된 개념의 작업으로 작가로서 가지는 고유의 철학과 성질을 직관적으로 형용하고자 한 작업입니다. 감상만을 위해 기물의 형태를 벗어나 회화적인 프레임을 띄고 도판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정해진 원소들로 이루어졌고, 그것을 어떻게 나열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백 白’이란 단순히 색의 영역에서의 백을 넘어,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로서 순수한 욕망과 자연의 흐름이 조응하며 나열되는 리듬, 그것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의미를 지니고도 있습니다. 〈The Captured〉로 표현하고자 하는 ‘백’ 또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입니다. 물레 위 밀고 당기는 힘으로 구현했던 기존 백자 기물의 형상은 우주 시공간을 이루는 중력의 힘으로 형태 구현을 확장 시킵니다. 한 줌의 흙을 모아 만든 편평한 판과 평면 위 유약의 흐름은 불속에서 수직과 수평적 힘에 의해 긴장을 이루며 하나의 개체가 되고, 용융점인 1350도에 도달하는 순간 모든 진행이 중첩되고 정지됨으로 형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자연요소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일련의 작업 행위들이 계절, 시간의 흐름과 같은 자연의 섭리와 궤를 같이 하고 그것을 포착함으로써 작업의 성질과 작가의 철학을 직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Q.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핸들위드케어에서의 세 번의 도예전을 통틀어 가장 큰 사이즈의 달항아리 작품이 눈에 띕니다. 작년과 비교해도 훨씬 큰 크기의 달항아리 작품인데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A. 달항아리는 늘 소성 후 높이 45cm 내외가 되도록 성형을 하고 있습니다. 큰 발 두 개를 붙이는 ‘업다지기법’으로 만드는 달항아리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물레 방향이 서로 달라 가마 속에서 수축이 반대로 일어나면서 비대칭적 형태가 됩니다. 매 소성마다 수축률이나 형태의 변화가 달라져 크기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이번 달항아리가 크게 느껴지시는 것 또한 달항아리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시선에 따른 시각적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달항아리가 가지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힘이라 생각됩니다. Q. 이전에 조개껍데기로 유약을 만드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어패류와 나무재 등 자연 재료를 연구하며 사용하고 계신데, 최근에도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계실지, 혹은 새롭게 실험해보신 재료가 있으실지요.A. 도자 작업은 재료의 차이에서도 결과가 크게 바뀌지만 같은 재료라도 가공의 차이에서 결과가 많이 좌우됩니다. 백토를 예로 들자면 광맥이 수직으로 뻗어있어 같은 장소에서 채취해도 성분이 다르고 또 성분 조성이 같아도 분마도에 따라 작업의 결과가 다 달라집니다. 유약 재료인 나무재나 장석들도 마찬가지고요. 자연 재료들로는 결과를 균일하게 예측하고 데이터화해서 사용하는 것이 불가하기 때문에 늘 같은 요소를 쓰더라도 유약과 소지는 매번 각각 비율을 달리하면서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Q. 계절과 자연의 변화,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우연성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작업을 이어오기는 녹록치 않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앞으로의 작업에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도예가로서의 바램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변하지 않을 일상이 반복되는 작업을 때로는 수행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이 만들어낸 힘든 순간에 부딪힐 때도 많지만 그런 고난을 상쇄시키는 결실도 우연을 동반해야만 따라오기 마련이라 좋은 것 아쉬운 것 모두 필연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려 합니다. 다만 우연성에 맡기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의 작업에는 작가 스스로의 의지로 아름다움을 쌓는 것이라 작품의 모양만큼 마음의 모습인 심상 또한 아름답게 이어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순례자와 같이 묵묵히 걸어나가며 깨달음이 작업이 녹아나는 작가로, 작품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이번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들을 위해 직접 입춘첩을 써주셨어요. 청룡의 해를 여는 첫 전시를 찾으신 분들께 큰 기쁨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올해 소망이 있다면 말씀 나눠주세요.A. 핸들위드케어에서의 겨울 전시는 처음이기도 한데, 새해의 첫 전시라 뜻깊게 생각합니다. 이맘때 입춘첩을 늘 고성에서만 나누었는데 올해엔 서울에서 더 많은 분들과 새해 염원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저 또한 기쁜 마음입니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날 속에서도 모두 작은 기쁨을 찾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박용태 작품전 《백수천경 白樹千景》은 2024년 1월 28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