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여름 속에서 미묘하게 달라진 바람의 온도를 느끼며, 뮌헨에서 전시 준비를 하고 있는 아트 디렉터 소니아와 서면으로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Sonia’s Tablescape》의 시작점인 《Sonia Meets》의 탄생, 여섯 작가분과 협업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 소니아의 테이블 정경이 서울에서 펼쳐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로웠던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려요. 먼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뮌헨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디렉터 소니아입니다. 독일계 브랜드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거쳐, 현재 《Sonia Works》라는 타이틀로 라이프스타일, 건축, 전시기획 등 다종다양한 분야의 기획과 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으로 승효상 건축가의 가구 ‘이로재 오브젝트’와 전시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활동했어요. 한편, 《Sonia Meets》 를 통해 애정하는 작가들과의 독창적인 협업과 전시를 선보입니다. Q. 아트 디렉터이자 수집가로서, 또 생활인으로서 테이블과 거실, 주방 곳곳을 채우는 테이블의 모습을 서울에 펼쳐보는 이번 전시는 일종의 큐레이션 작품전인데요.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과 사물을 선택하신 이유, 여섯 분의 작가와 함께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A. 심금을 울리는 ‘확신의 피스’를 아직 못 찾았을 때 실행에 옮겨요. 《소니아 미츠》는 그런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발로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친밀한 작가님들을 랜선으로 만나, 함께 궁리하고 긴 호흡으로 구상한 뒤 작업을 전개해요. 적극적인 형태의 협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제 기준으로 《소니아 미츠》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공들인 아름다움이면서도 매일 주저없이 손이 가는 것들이어야 합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슴 졸이며 사용하고 간직해야하는 아슬아슬한 미감은 저와 거리가 있어요. ‘완상’하는 즐거움은 다른 좌표에서 경험하는 걸로 충분하거든요. 만듦새, 쓰임새가 좋은 균형감을 갖고 있어야 하죠. 시선을 빼앗듯 가두지 않는, 일상의 맥락 안에서 즐겁고 독창적인 서사가 있는 확신의 피스들을 선보이려고 해요. 기물을 예로 들어볼까요? 큰 마음 먹고 아슬아슬하게 꺼내 쓰는 기물도 때때로 필요하지만, 어렵지 않게 ‘그릇’이라 부를 수 담담한 그릇을 원했습니다. 혹여 물들까 가려야 할 음식 없고, 나이프를 사용해도 타격 없고, 식기세척기도 소화하는 그릇. 아이에게 내줘도 마음 졸일 일 없이 튼튼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런 그릇이요. 카푸치노 컵의 경우 아침에 커피를 두 번 내리지 않아도 되고, 귀리우유로 거품을 두툼히 올릴 수 있는 호방한 용량의 카푸치노 컵을 떠올렸습니다. 어린 주니어의 손과 용량에 꼭 맞는 킨더 카푸치노 컵도요. 한창 엄마, 아빠와 같은 ‘내 것’을 찾을 나이라, 어른과 아이를 위한 컵 두 개가 짝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테이블웨어를 위해 정지원 작가님과 기물을 만들게 되었고, 첫 팔레트에는 뮌헨과 서울의 산책길에서 만나는 하늘과 구름, 모래, 벽돌의 색을 담았습니다. 이송희 작가님은 《소니아 미츠》의 시작점부터 함께해왔습니다. 대개 클라이언트잡을 위해 디지털 툴로 브랜딩 작업을 주관해왔지만 제 브랜딩만큼은 ‘손으로, 손에 의한 것’이길 바랐어요. 멀리서도 미감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인 ‘망원경’이 불변의 주제어였습니다. 제 할아버지 유품 중 가장 좋아하는 사물이기도 하고요. 망설임 없이 이송희작가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단 하나의 사물을 작업할 때도 종으로 횡으로 그 궤적을 훑고 관통해야 비로소 펜을 드는 분이라, 협업 과정에서 충만한 배움, 즐거움이 따라와요. 작가님과의 다음 프로젝트는 뮌헨에서 직접 선물 포장과 카드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스탬프였습니다. 두 서랍 가득 채우게 스탬프가 많지만, 정작 제게 의미있고 원하는 사물이 담긴 스탬프는 기성품에서 찾을 수 없었거든요. 제 기준 축하와 기쁨, 응원의 자리에 없으면 안 될 열 개의 사물을 선정했고, 작가님이 이 서사에 특유의 위트를 얹어 펜드로잉 원화를 완성했습니다. 메멘토 잉크패드를 결합하면 에칭처럼 놀랍도록 섬세한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어요. 이번 전시 《Sonia’s Tablescape》를 큰 품에 아우르는 작업이 이송희 작가님의 드로잉들입니다. 뮌헨에서 찾은 빈티지 프레임 속에 작가님의 드로잉들이 자리를 잡는 ‘결합'의 과정도 뜻깊었어요. 방문하신 분들이 큰 작품을 두고 오랜 시간 산책하듯 각자의 숨은 그림 찾기를 즐기는 모습도 저희를 행복하게 해요. 저와 주니어는 마고 Magot 의 천진난만한 니들펠트 작업을 사랑해마지 않습니다. 양모 소재를 바늘로 지어 만든 마고의 오너먼트들 역시 구겔호프 케이크와 촛대, 프레첼, 계절의 과일처럼 일상의 테이블을 구성하는 것들이 주인공이 됩니다. 2021년 브렛첼 오너먼트로 시작한 마고와는 두 번째 만남인데, 넘치는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어요. 매년 겨울마다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박선민 작가님의 〈리-보틀 매병〉은 식사에 함께 했던 와인병이 꽃을 곁에 두기 위한 쓰임으로 다시 테이블에 오르는 서사를 지닌 작업이죠. 꽃을 굳이 꽂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스틸라이프 한 점이 되는 화병입니다. 제 창가와 선반에 꼭 한 점씩 자리하고 있어요. 한편, 〈백동 반지합〉과 〈손 위의 조각들〉은 노은주 작가님의 옥수동 작업실로 향했던 2017년 겨울이 시작입니다. 작업대 위를 채운 선과 면의 금속 조각들, 오래 덧그리다 가닿은 확신의 드로잉. 은주 작가님의 단단하고 순정한 첫 인상이었어요. "달구고 벼리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형形을 만들어내고 누군가의 손 위에 놓여야 상이 완결된다"는 반지 작업, 그리고 그 반지를 착용하고 보관하는 일상의 시퀀스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백동과 유리 베일의 반지합은 감춤과 드러냄이 탐미적으로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그려진 글, 읽는 그림’ 을 짓는 이희조 작가님은 잔잔히 거듭하되 적극적으로 변주하는 제 일상과 공간이 하나의 고유한 팔레트로 느껴진다고 했어요. 저는 희조 작가님이 오브젝트를 가까이 두고 선명히 조망하는 시선과 질감에 부여하는 질서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 우리는 무구하고 자유로이 변주하되 같은 패턴을 지속하는 아침을 다뤄보기로 했어요. 또렷한 눈으로 대상을 좇는 관찰자이자 거침 없이 플롯을 구체화하는 그녀가 뮌헨의 소니아홈 정경이 팔레트로 옮기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명도값 100의 짜릿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이번 테이블 스케이프 전시 또한 이렇게 제 테이블에 하루도 쉬지 않고 오르는 것들, 제 벽에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것들을 여섯 작가님과 함께 채우게 되었습니다. Q. 이번 큐레이션 작품전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적인 취향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Sonia Meets》 가 있어요. 버섯, 망원경과 같은 사물에서 모티브를 얻고 작가의 손을 통해 구체적인 작품으로 구현하고, 그 결과물을 향유하는 과정. 마치 전시가 기획되고, 보여지고, 각자의 일상 속에 스며들기까지 전시의 전 과정을 압축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사소하고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아요. 정지원 작가와 에그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독일 달걀과 한국 달걀의 지름의 차이가 크지 않은지 줄자로 심각하게 체크해 본 순간이 떠오르네요. 어느날은 작가님이 급히 모교 근처의 관악산을 올라야 한대요. 이유를 물으니 그 산에서 가져온 모래로만 도침 작업을 해야하는데 부족하다고, 다른 모래로 타협할 수가 없는거죠. 저는 이렇게 정신성이 강한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아요. 케이크 스탠드 이야기를 해보자면, 독일에서 제 심금을 울리는 케이크스탠드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미래의 케이크 스탠드는 꽤 구체적인 모습으로 머리 속에 있었죠. 삼인조 생일마다 굽는 구겔호프에 잘 어울리는 기와 유약, 적당한 지름의 너무 옴폭하지 않은 상부 접시, 하부는 세라믹 소재가 아니었으면 했어요. 저는 늘 이종 물성이 부딪혀 만드는 불균질한 조화에 끌리는 편이에요. 노은주 작가님의 백동과 유리베일 반지합처럼요. 정지원 작가님과 저는 벽돌색 접시에 짙은 호두나무 다리를 더한 모델을 구상하고 스케치를 완성했지만 이 걸 구현하는 과정에서 단단한 벽에 부딪칩니다. 여기서 금속 공예를 하는 노은주 작가님이 팔 걷고 나서 주셨고, 그리하여 저는 두 작가님의 합작으로 이번 전시에도 소개한 아름다운 케이크스탠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각 작가님들의 고유한 작업을 보는 것 만큼이나 소니아 미츠의 연결고리를 통해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과정은 제게 충만함을 줍니다. Q. 한편 뮌헨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계세요. 머무는 곳에 따라 자연스레 삶의 풍경도 달라질 듯 합니다. A. 여덟시간의 시차만큼이나 생활리듬의 차이도 크지만 투트랙으로 생을 변주하며 사는 게 즐거워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일했으니 한국의 이른바 K-스피드에 아주 친밀한 한편, 독일에서의 강제 루틴에도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뮌헨에서는 일요일에 모든 상점과 기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게 되거든요. 이렇게 서울과 뮌헨에서의 강약중강약이 체화되다보니 소니아 웍스, 소니아 미츠의 제 업의 균형감도 바로잡혔어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작가님들은 서울과 뮌헨의 물리적인 거리가 작업 방식에 신선한 환기가 된다고도 해요. 여덟시간의 시차가 주는 특유의 리듬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작가님들이 밤에 구글 시트에 작업 노트를 남겨두면 제가 아침에 일어나 읽고 답하는 방식이죠. 실시간 소통이 아니기에 오히려 각자의 호흡대로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어요. Q. 커피와 설탕 보관함, 구겔후프 틀, 커트러리. 전시에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테이블웨어와 그림 뿐 아니라 이전 세대의 미감을 간직한 소장품이 한 공간에 펼쳐집니다. 이송희 작가님의 펜드로잉이 담긴 스탬프에는 샴페인과 초, 케이크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이희조 작가님의 그림 역시 식탁의 정경이고요. 디렉터님에게 테이블, 식탁, 주방의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A. 소니아 미츠 프로젝트가 벽, 테이블, 식물, 종이 위를 거쳐, 손 위에서 변주 되는 모든 서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곳은 역시 ‘집’이죠. 공들인 생활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꼭 작품과 기물로부터 비롯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곁에 두는 생활도구 하나도 고르고 고르는 마음, 작업을 애호하는 마음이 일치하면 집안 곳곳에 정경이 만들어지죠. 그래서 ‘소니아의 테이블스케이프'라고 명명한 이번 전시에서는 곁에 두고 매일 손에 닿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테이블을 주제로 다뤘어요. 핸들위드케어 팀 덕분에 전시장 안에 벽도 세우고, 그야말로 뮌헨 집의 한 시퀀스를 옮겨놓을 수 있었죠. Q. 식탁의 장면으로 더 깊게 들어가보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실물 구겔호프 케익틀이 등장합니다. 스탬프의 구겔호프 케이크 이미지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빈티지 구겔호프 케익틀로 이어지는 시선을 따라가면 구겔호프가 이야기의 열쇠이자 상징인 것 처럼 느껴져요.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독일은 생일을 맞은 사람이 케이크를 구워 가까운 친구, 동료들과 나눕니다. 어떤 케이크를, 어떤 레시피로 구울 것인가에 대한 화두는 독일에 사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이야기에요. 모국에선 한 번도 케이크를 구울 일 없던 제게는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또 일요일 오후 3시 Kuchenzeit ‘케이크타임’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티타임인 셈인데 ‘케이크’가 더 핵심이에요. 할머니의 쿠흔차이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케이크가 바로 “구겔호프”입니다. 별다른 필링이 없는 스펀지케이크라 호불호가 없는 케이크, 소복한 리스 형태가 주는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생일케이크계의 클래식으로 통해요. 그렇게 구겔호프에 친숙해가던 차에 이웃 할머니 레기나의 부엌에 걸린 세라믹 구겔호프 틀이 제 구겔호프 소장품 1호가 되었어요. 이후 지금은 구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와 소재의 구겔호프틀 컬렉터가 되었고, 축하와 응원의 자리에 빠질 수 없기에 이후 이송희 작가님의 펜드로잉 원화로도, 마고 작가가 바늘로 지은 구겔호프 케이크로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Q. 완연한 여름에 시작한 전시가 끝날 즈음엔, 가을의 문턱이 기다리고 있어요. 계획중인 프로젝트, 새롭게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전갈자리인 제 생일에 또 하나의 구겔호프를 구워 정지원 작가와 만든 케이크 스탠드에 올릴거에요. 11월에는 전재은 작가와 소니아 미츠 온라인 전시를, 뮌헨의 한 컨셉스토어에서 노은주 작가, 박선민 작가와의 협업을 앞두고 있어요. 12월에는 TWL 크루로 잠시 합류해 근사한 프로젝트의 커뮤니케이션을 원격으로 지원할 예정이고요. 그리고나면 크리스마스가 문턱일테니, 트리에 마고의 펠트 오너먼트를 걸어야죠. 큐레이션 기획전 《Sonia’s Tablescape》은 2023년 9월 10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with- 사진 제공 : 소니아 미츠, 메종코리아- 전시 촬영 : 핸들위드케어,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