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혜 작가의 작품전《무늬예찬》을 관람하는 또 다른 시선, 「시대와 함께 읽는 나전 螺鈿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물즈』, 『뮤지엄서울』을 집필한 김서울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 온 나전공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개별 작품 노트와 함께, 저마다의 자개 문양이 겹겹이 품고 있는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다정한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시대와 함께 읽는 나전 螺鈿 이야기 자개로 만든 무늬 나전공예나전은 소라형 껍질을 가진 조개를 뜻하는 글자 나(螺)에 금속판이나 금속을 이용해 판형 화면을 꾸미는 것을 뜻하는 전(鈿)을 합한 단어로 커다란 소라 모양의 야광조개 같은 재료를 가공해서 만든 자개를 주재료로 하는 공예다. 재료와 기법을 한데 묶어 나전칠기로 부르기도 한다. 다루기 어려운 재료인 자개를 단단히 고정해 장식하는 칠 기법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주인공이자 가장 중요한 장식 요소인 나전 재료의 빛 두께와 같은 특성과 그 특성에 어울리는 문양이 나전 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전통공예에 사용되는 도안과 재료는 사회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해방 이후에는 ‘우리 것’ 즉 전통에 대한 강조가 늘었고 그 소비 또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와 함께, 1970년대 경제 성장으로 인해 자개장이 필수 혼수품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며 늘어난 수요량을 감당하기 위해 외국산 자개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동남아, 호주 등지에서 저가의 많은 물량을 수입할 수 있었으며, 수입산 자개는 이전에 사용하던 재료에 비해 색상이 다양하고 화려하며 두께에도 차이가 있어 장롱문 같은 넓은 화면을 전보다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나전공예에 수입 재료가 완전히 정착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이 새로운 재료의 특성을 살려 염산으로 자개를 부식해 질감을 만드는 기법이 생기기도 했고, 직접 조각칼로 조각하는 문양에 화려함을 더하기도 했다. 이번 《무늬예찬》의 작품에 사용한 도안은 수입산 자개가 정착한 이후의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양한 종류의 자개를 혼용해 장식적 효과를 꾀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원본이 결손된 도안의 경우에는 작가가 화면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결손부를 임의로 메워 완성한 부분도 있다. 끊음질과 줄음질도안을 만드는 기법에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끊음질’과 ‘줄음질(주름질) ’이다. 끊음질은 얇고 길게 직선으로 자른 자개를 칼로 끊고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주로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할 때 많이 사용한다. 줄음질은 종이 위에 먼저 그려 둔 도안을 따라 작은 톱으로 자개를 음각하듯 오려내는 기법인데, 이번 전시에 사용된 도안은 대부분 이 줄음질로 제작된 것이다. 기법의 특성상 톱이 들고나기 편하도록 음각된 선이 길게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자개 도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개를 붙일 가구나 소품의 크기, 완성된 공예품의 용도, 제작 당시 유행을 고려해 작품 전체 화면을 뒷면이 비치는 얇은 종이 위에 그려 넣는다. 사용할 자개를 고른 뒤에는 새, 구름, 꽃잎 등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를 퍼즐 조각처럼 작게 나누어 줄음질로 오려내어 하나씩 종이 뒷면에 옮겨 붙인다. 이처럼 작게 분리한 문양을 조합해 큰 화면을 완성하는 제작 방식 덕분에 작품을 만들면서도 도안의 일부를 변경하거나 기법 등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 결과 나전 공방 및 공장에는 작게 잘려진 채로 사용되지 않은 줄음질 도안들이 쌓이게 됐다. 일부 도안은 다른 작품에 어울리는 경우 재사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시대를 함께한 무늬자개 도안의 종류에는 식물, 동물, 문자, 기하, 기물, 산수, 인물이 있으며 대부분 여러 종류의 문양을 조합해 하나의 화면으로 완성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당시 주 수요자였던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일본 전통 문양을 반영해 벚꽃이나 단풍 문양을 도입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1960년대에는 한국전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의 전통 공예품 수요가 크게 늘자 한국 고유의 미감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통 문양이 자주 등장했다. 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 기와에 새겨진 문양을 모티브로 한 도안, 갓이나 곰방대 등 조선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도안, 기념품으로 들고 가기 좋은 담뱃갑 크기에 어울리는 간단한 사군자 도안이 대표적이며 문화재를 그려 만든 도안이 유행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문화재를 주제로 하는 작지 않은 크기의 도안 제작이 늘어 불상이나 다보탑 같은 전통 건축 유물,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을 옮긴 도안이 나타났다. 이런 문화재 도안은 주로 사진 프레임. 개인 발주로 만들어지는 사업체 등 홍보용 장식품에 단독으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에는 사회 경제적 변화로 자개장롱과 같은 실내 가구의 수요가 늘며 이 영향으로 생긴 수도권 중심 자개 공장에서는 더욱 빠른 생산을 위해 도안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생산에 편리한 형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대형 가구를 장식하기 위해 화면을 크게 채우며 화려함을 강조할 수 있는 공작, 봉황, 모란이 주된 문양으로 자주 등장하며 이전에 만들어진 동일한 도상 대비 크기가 커진 점이 특징이다. 해방 이후 도안과 제작 환경에 여러 변화가 있었으나, 1970년대 자개장 모조품이 대량 제작되어 나전공예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기도 했으며, 1980년대에 들어 아파트 주거 문화 정착과 함께 가구의 유행이 바뀌며 수요가 줄었다. 전시에 등장하는 문양의 개별 제작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부분은 1970년대 이후 문을 연 서울 시내의 자개 공장에 쌓여 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흡수된 일본 전통적인 문양에서부터 해방 이후 새롭게 등장한 문화재문, 자개장롱에 주로 등장한 십장생 등 산수·동물 문양, 그리고 최근 젊은 층이 좋아하는 작은 식물 문양까지 여러 시기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당대에 유행한 도안을 두루 소화해 대규모 공장에서 구매자의 요구에 맞추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나전칠기 제작·전수 지역으로 알려진 통영의 경우 소규모 도제식 운영으로 인해 같은 공방 내에서는 도안의 세부 디테일 및 표현에 나름의 일정성이 있다. 반면 공장 제작 방식의 경우 여러 장인이 개인의 미감을 보다 드러낼 수 있던 환경이었다. 동일한 소재를 주제로 도안을 그리더라도 표현과 기술에 차이가 있어 동일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린 이를 구분하고 특정해 그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기는 어렵고 명확한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 줄음질 도안들을 따로 떼어보면 오랜 시간에 걸친 정확한 흐름을 알기는 어렵지만, 한데 모여 있을 때는 전통 나전공예가 그간 변화한 방향을 알려주는 흐릿하지만 제법 친절한 설명문이 된다. 김서울박물관을 좋아하는 유물 애호가. 『유물즈』, 『뮤지엄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산책』를 썼으며 현재 대학원에서 박물관과 유물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무늬예찬 - 남미혜 작품전》은 2022년 12월 11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