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찬 기운이 감돌던 3월의 초입, 장훈성 공방 작품전 《Shaping Eternity》를 앞두고 장훈성, 나카야마 마미유 두 작가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부부이자 동료로서 도자 작업을 함께한 지 20여 년. 오랜 세월 서로의 존재를 깊이 느끼며 걸어온 여정의 이야기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진실한 가치를 되짚어봅니다. 두 작가가 빚어온 시간들과 그 안에 깃든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Q. 안녕하세요, 작가님. 핸들위드케어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장훈성, 나카야마 마미유 두 작가님께서는 동료이자 부부로서 장훈성 공방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설명과 함께 공방 소개를 부탁드려요.A. 장훈성: 안녕하세요. 저는 장훈성입니다. 주로 그릇이나 차도구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는 물레 작업과 유약 바르기, 가마 소성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마미유(이하 마미유): 안녕하세요. 저는 포포 에이 시리즈 전체 구상과 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이천 매장을 꾸미거나 관리, 포장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저희는 주로 차도구와 생활자기를 만듭니다. 분청과 문양 작업을 시작으로 점점 작업이 다양해지면서 회령유와 지금의 포포 시리즈 등을 만들고 있어요. 장훈성 공방의 동료가 그려준 그림. 좌 장훈성 우 나카야마 마미유와 반려견 포포 Q. 이천 도자예술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고 계시지요. 작업실에서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두 분만의 루틴이 있으신가요? A. 마미유: 집과 작업장, 매장이 모두 붙어있어요. 아침 9시에 작업실로 내려와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떱니다. 그 다음 강아지 포포를 산책시키고 10시 30분쯤 작업을 시작해요. 점심을 먹고 나면 2시까지 휴식 시간을 갖는데 그때 장훈성 씨는 낮잠을 잡니다.(웃음) 이후 상쾌한 정신으로 다시 작업을 시작해 저녁 6시까지 이어갑니다. 작업을 마친 뒤에는 차를 마시며 잠시 쉬고, 저녁을 먹은 후 작업장으로 돌아가 마무리 작업을 하거나 배드민턴을 칩니다.(배드민턴은 5년째 즐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포포와 한 번 더 산책을 하고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듭니다. Q. 장훈성 공방의 생활 식기와 차도구를 통해 ‘편안함과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해 오셨는데요. 작업의 뿌리가 되어주는 이 가치가 두 분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따뜻함을 소중히 여기게 된 특별한 계기나 기억이 있으신가요?A. 장훈성: 분청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깊이 있는 작업에 매료되어 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 생활자기는 누구나 편안하게 자주 쓸 수 있어야 하고 음식이 돋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편안함과 따뜻함을 전달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 같네요. 작업을 하다 보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제게 아름다움이란 따뜻함과 편안함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도자 공예가 주는 큰 매력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분청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마미유: 일본에서 와 처음 한국미술을 접했을 때부터 그 안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남편이 만든 분청 도자기에서도 제가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편안함이 전해졌고, 이 느낌을 저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작업을 돕는 양이 늘어나면서 저도 이 따뜻한 감성을 포포 에이 시리즈에 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이 처음 제안 주셨던 전시의 키워드는 ‘십장생’이었어요. 십장생이 영원을 상징하는 존재란 점에 착안하여 전시 타이틀도 《Shaping Eternity》로 정해졌는데요, 십장생을 키워드로 삼게된 이유나 배경이 궁금합니다.A. 마미유: 늘 남편이 작업 속에 산과 자연을 담고자 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고,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 표현이 좀 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십장생을 주제로 선택하게 됐고요. 저는 저대로 포포 에이 시리즈로 이 전시에 참여해 십장생의 형태(산, 구름, 물, 돌, 거북이 등)를 표현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Q. 십장생의 모습을 담은 포포 에이 시리즈라니 상상만으로도 무척 사랑스럽고 흥미롭네요. 이번 전시에서 십장생 작품과 더불어 어떤 작품을 더 만날 수 있을까요?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A. 장훈성: 새로운 것은 회령유의 산 시리즈나 돌 그리고 도벽(도판)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회령유의 특성이 중력과 불의 의해 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약이나 흙과 섞이면서 다양한 표현이 되어 재미난 현상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오로지 불과 중력의 흐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재미난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눈여겨봐 주시길 바라요. 마미유: 배 시리즈가 있는데요. 배를 타고 멀리 여행 가고 싶은 제 작은 소망을 담았습니다. Q. 반려견 ‘포포’와 반려묘 ‘에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아낸 포포에이 시리즈는 많은 분께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지요. 아마도 각자의 소중한 반려동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두 분께 포포와 에이는 어떤 존재인지, 또한 이들과 함께한 일상 속 기억에 남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A. 마미유: 포포는 저희가 키우는 강아지이고요. 에이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이 보살펴주던 유기묘입니다. 포포도 다리 밑에서 발견된 유기견이었고 이제는 우리 가족이 된 지 올해로 7년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표정이었는데 점차 신뢰와 애정의 느낌을 눈빛과 행동으로 표현할 때마다 감동을 받았답니다. 에이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이 먹이를 주다 보니 집까지 쫓아온 적이 있었어요. 차량 밑에 숨어 있던 걸 모른 채 차를 출발했는데 자꾸 고양이 소리가 나서 바로 세워 확인하니 보닛 안에 에이가 들어가 있던 적이 있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느 겨울날은 3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의 작업장에 몰래 따라와 작업이 끝날 때까지 숲에서 기다린 적이 있어 깜짝 놀랐어요. 장훈성: 처음 포포를 만들 때는 차도구의 뚜껑을 올려놓는 개치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몰드 작업을 해서 대량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점점 아내가 디테일을 추가하고 모양을 변형하면서 귀엽게 만들다 보니 지금은 마미유 씨의 포포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포포 시리즈가 나오고 인스타그램 DM으로 고양이도 만들어 달라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에이가 생각이 났고 지금의 에이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Q. 포포에이 시리즈를 작업하실 때 강아지와 고양이가 다정하게 어울리는 영상을 보며 제작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작품 하나하나에 ‘가족을 바라보는 모습’, ‘공놀이하는 친구’, ‘꼬리를 흔들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친구’ 같은 이야기를 담는다고 하셨는데, 이 스토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지나요? 시리즈의 전체적인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A. 마미유: 언젠가 제가 없어도 포포 에이 시리즈에 담긴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이야기를 생각하며 제작합니다. 동물의 표정이나 자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스토리는 주로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동물 친구의 모습을 보며 영감을 받아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는 흙의 성질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포포 에이 시리즈를 통해 도자기로 완성되는 흙의 매력을 꺼내 보이고자 합니다. Q. 장훈성 작가님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이를 볏짚을 태워 만든 회령유로 작품에 담아내고 계시지요. 다른 유약이 아닌 회령유를 작업에 사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회령유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A. 장훈성: 일본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한 사발 전시회를 데려가 주셨는데, 그곳에서 미와 쥬세츠라는 인간국보 전시회를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유약을 한번 사용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유약이 바로 볏짚 재유였고 한국에서는 회령유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었어요. 볏짚을 태워 재를 만들고 재를 다른 재료와 섞어 유약을 만듭니다. 유백의 따뜻함과 흘러내리는 모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쓰고 있지만, 통제가 어렵고 과하게 흐르면 바닥에 붙어 깨지는 경우도 많아 사용하기 어려운 유약입니다. 특히 여러 유약과 섞이면 다양한 마블링 효과로 푸르름이나 유백이 마치 파도처럼 혹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Q. 회령유 시리즈는 핸들위드케어와 티더블유엘에서도 처음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작업이라 더욱 기대됩니다. 한편, 분청 작업인 ‘고백달 시리즈’와 눈꽃, 만자문 등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데요. 각각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A. 장훈성: 어렵네요. 만자나 눈꽃 문양 시리즈는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선생님께서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라고 하셔서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돌아보다가 외벽이나 굴뚝, 창살 등의 문양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어요. 이런 문양의 패턴을 제 작업에 적용하면 어떨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던 중에 빗살무늬 토기에서 착안한 빗살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많은 분이 눈꽃 같다고 하셔서 지금은 눈꽃 무늬로 불리고 있습니다. 번영을 나타내는 만자 문양은 궁궐의 외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장훈성 공방의 시그너처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문양들이 촌스럽거나 시끄럽지 않게 요리와도 잘 어우러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마미유: 저는 문양 시리즈를 제작하진 않지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남편의 작업을 사진으로 찍어 왔는데요.(SNS는 대부분 제가 담당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남편이 만든 문양 시리즈나 고백달 분청 작업이 한국 전통이라는 느낌보다는, 저에게는 새롭게 접하는 작업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그런 마음을 담아 찍으려고 했고, 아마 이런 부분들이 사진 속에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현대적인 분위기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Q. 4년 전쯤, “너무 열심히 하지 않되 감동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는 글을 남기신 걸 보았어요. 짧은 문장이지만 작업을 대하는 두 분의 태도가 진솔하게 담겨 있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문장은 지금도 두 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A. 마미유: 이 말은 일본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인데요. 20대에 들었을 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깊이 와닿았고 선생님께서 진심을 담아 전해주신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에, 살아오면서 늘 그 뜻을 곱씹으며 지내왔어요.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경험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저 자신도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가겠죠.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장훈성: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도자기 바보가 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늘 아내가 그 말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Q. 많은 변화 속에서도 잊지 않고 지켜온 가치가 있다는 게 두 분의 작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많이 다르지만 함께 작업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셨는데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서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A. 장훈성: 옆에서 지켜본 아내는 늘 작업하고, 밭일하고, 요리하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끈기 있게 꾸준히 작업하는 스타일이죠. 항상 많은 생각을 한 후 천천히 시작하는데, 저는 정반대입니다. 즉흥적이고, 꾸준히 하긴 하지만 몰아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만들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입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에 부딪치기도 하고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토론하면서 작품의 감상이나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예술에 관해 얘기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해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 좋고 감사합니다. 마미유: 부부가 함께 작업하다 보면 불편한 순간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이런 변화가 참 소중하고 즐겁습니다. Q. 완연한 봄의 한 가운데 전시가 시작됩니다. 전시를 찾는 관람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장훈성: 저희 작업을 보면서 무언가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고 웃으면서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마미유: 애써 어우러지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모습 그대로 다름을 인정하며 지내는 것도 편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보는 분들은 통일성이 없고 제각각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합니다. 장훈성 공방 — 장훈성, 나카야마 마미유 작품전 《Shaping Eternity》는 2025년 3월 21일부터 4월 6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장훈성 공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