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안부를 손꼽아 기다리던 2월의 어느 날, 핸들위드케어에서 첫 개인전을 앞둔 이예지 작가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작가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그의 작업에 고스란히 스며든 그 고운 마음을 음미하며 나눈 대화를 여기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핸들위드케어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저는 나무로 작업하고 있는 이예지입니다. 작은 가구와 함을 주로 만들고 <목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목록은 나무 목(木)에 기록할 록(錄)을 써서 나무로 쓰는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좀 더 개인적으로는 살아가는 동안 완수해야 할 나만의 임무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Q. 작업실에서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만의 작업 루틴이 있으신가요?A. 저만의 사소한 루틴이라면, 오전 중에 출근해서 일단 커피를 한 잔 올리고요.(모카포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커피 내린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전날의 작업들을 살펴봅니다. 몇 해 전부터 불렛 저널을 쓰고 있는데, 전날 작업 마치고 들어간 시간, 수면 시간, 출근한 시간 등을 간단히 기록하고, 그날 할 일을 순서에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늘 목표한 만큼 일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날 해낸 일들에 시원하게 줄을 그으며 자신을 격려하는 편입니다. Q.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Loving Imperfections》는 ‘그저 작은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땔감이라 여겨지는 자투리 목재를 사용하며, 사소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을 이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A. 작업을 하면서 작품에 사용하고 남는 부분들에 늘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한 덩어리의 나무였는데, 내가 갈라서 쓰는 그 한순간에 한쪽은 작품이 되고 한쪽은 버려지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물론 흠이 없는 부분을 잘 골라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목수의 역할이기도 합니다만…. 골라내고 남은 부분과 작은 구석들이 예뻐 보이고 마음이 쓰여 모아둔 나무들이 10년 치가 되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나무들로 작은 것들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상감 작업도 그렇게 시작하게 됐고요. Q. 흠이 있거나 불완전한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태도가 작품이 아닌 작가님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순간도 궁금해요. 관련된 일화나 습관 같은 것이 있을까요?A. ‘그저 작은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에 담은 제 마음을 꿰뚫고 질문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전시의 제목으로서 생각하게 됐지만 제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마음가짐이기도 해요. 작은 일부터 열심히 하고, 곁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고 곱게 바라봐주는 것. 이런 것들이요. 그러고 보니 이런 마음에서일지 모르겠지만 흠이 있거나 모양이 못나서 상품 가치가 떨어진 채소, 과일 등을 랜덤하게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네요. 삐뚤빼뚤하고 조그맣게 생긴 채소들을 받아볼 때 혼자 열심히 귀여워하고 있어요. Q. 작업 시간이 나무를 가공하는 일과 나무를 ‘감상하는’ 일로 나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나무의 곱고 기운찬 선에 빠져든다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 나무라는 소재 본연의 아름다움을 깊이 아끼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대학에서는 목공예가 아닌 섬유 공예를 전공하셨다고요. 목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버려지는 가구나 작은 물건들에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케팅을 위해 빠르게 제작되고 빠르게 폐기되는 것들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꼈었어요. 그 마음이 곧 오래 바라보고 아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목공 기술을 익히고 지금의 작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Q. 《Loving Imperfections》는 작가님의 첫 개인전이지요.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공예 작가들과 함께하는 그룹전에 참여해 오셨지만, 개인전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많은 분이 기대하고 계실 텐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이시나요? 전시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A. 이번 전시에서는 2022년부터 작업해 온 패턴 상감 작업을 선보입니다. 본격적으로 나무에 패턴을 새기는 작업을 하기 이전에도 금속을 상감한 손잡이가 있는 함을 만들어왔는데, 서로 다른 재료가 오차 없이 끼워 맞춰지는 감각을 늘 좋아해 온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목재 표면 위에 수를 놓듯 패턴을 새기는 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고, 이 기법을 활용한 작은 물건들을 전시합니다. 특히 에보나이징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각기 다른 수종의 나무가 가진 특징을 패턴으로 표현한 함을 주로 선보이는데요. 남겨진 것들을 누구나 사랑스럽게 여길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이 함들입니다. Q. 작품 표면에 은은하게 반짝이는 동그란 무늬들이 눈에 띕니다. 상감기법을 활용해 나무에 패턴을 새기는 작업을 주로 하게 된 계기가 계기가 무엇인가요? 작업이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과정도 들려주세요.A. 처음엔 작은 크기의 자투리들을 어루만져, 일상적인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패턴이 있는 찻잔 받침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찻잔 받침을 여러 개 두고 사용할 때, 타일처럼 그림이 이어지면 물건을 사용하는 재미가 더 있을 것 같아서 처음 패턴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책등이 그림으로 이어지는 전집류의 책을 늘 흐트러짐 없이 맞춰 놓고 퍼즐을 즐겨하던 아이가 자라 자연스럽게 이런 물건을 만들게 된 걸까요? 섬유 작업을 하시는 몇몇 작가님들께서 저에게 ‘텍스타일을 전공해서 그렇다’라고 하셔서 무릎을 탁! 친 적도 있었답니다. 작업의 과정은 간단합니다. 다양한 자투리 나무를 활용해 미리 만들어놓은 여러 크기의 총알(상감을 위해 동그랗게 떼 놓은 상감재)을 이리저리 구성해 보고, 문양집도 찾아보고, 작은 샘플을 만들어보고, 상감할 물건의 크기나 비례에 따라 패턴을 배치해서 완성합니다. Q. 대표작인 함함함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함함함은 어떤 작품인가요? 여러 사물 중에서도 특히 ‘함’이라는 상자에 집중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A. ‘함함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담하고 탐스럽다는 뜻인데요. 그 말의 명사형으로 함함함이라는 시리즈 이름을 붙였습니다. 나무 목(木)자가 세 개가 모이면 숲을 뜻하는 삼(森)자가 되는 것처럼 ‘함’ 세 글자를 모아놓으니 제가 만드는 함의 총합 같기도 하고요!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참 좋아해요. 자세히 뜯어보다 보면 귀엽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정말 많기 때문인데요. 목공을 처음 접하던 시절,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구조에 대해 한참 관심이 많을 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갓 함’이었어요. 말 그대로 갓을 보관하는 함이었는데, 그냥 네모난 상자가 아니라 가운데가 우뚝 솟은 갓 모양의 함이더라고요. 그 모양에 한 번 반했고, 함을 가만히 보는데 함 안에 보관한 갓이 정말 귀한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함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함’은 ‘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중한 물건의 집을 지어주는 마음 같은 것도 너무 좋았고요. Q. 주얼리를 담는 소중함, 연필 한 자루를 담는 필요함, 인센스 버너로 사용하는 은은함…. 각각의 함에 붙은 이름이 참 절묘하고 귀엽습니다. 가장 적격의 단어를 찾아 함의 이름을 짓는 순간이 작업 중에서도 특별하고 애틋한 의식 같은 시간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A. 최근에 조카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짓는 일은 그 존재에 대해 은은하게 상상하게 하는 일이란 걸 느꼈어요.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좋아하는 말들을 마구 덧붙이잖아요. 저도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해서 그 함의 용도를 은은히 상상하게 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다정하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차 도구를 넣는 함은 차 다(茶)를 써서 ‘다정함’ 이렇게요. 이름이 귀엽고 웃기면 더 좋고요. 이름까지 지으면 비로소 ‘다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만약 갓 함을 만들게 된다면 이름은 ‘갓 퇴근함’ …?(웃음) Q. 작가님이 ‘사랑하는’ 것과 순간들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어요. 작업 중 가장 즐겁게 몰입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사용하는 기법이나 나무의 수종 등 작업 과정에서 작가님이 특별히 애정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세요.A. 나무를 가만히 볼 때, 어떤 작업을 할지 상상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그리고 나무 표면을 대패질하여 이제 막 깎아내기 시작했을 때, 나무의 진짜 색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순간을 좋아해요. 답하면서 생각해 보니 기계로 가공하는 시간이나 수공구를 다루어 작업하는 시간 등 대부분의 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네요. 최근에는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동그란 상감재를 끼워 넣고서 대패질해 상감재가 표면과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Q. 작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님을 사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전통 가구 작업을 배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이 배움이 작가님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A. 처음 전통 가구를 접하고 나서는 이 작업이 마치 농사처럼 호흡이 길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통나무를 켜고 건조를 거쳐 아주 천천히 마름질하고 가구가 만들어지기까지 적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작업하는 과정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전통 가구가 가지고 있는 지혜롭고 위트있는 요소요소는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원래도 좋아했던 것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을 통해 각종 기법과 스타일을 배우는 것도 크지만, 선생님의 작업하시는 태도에서 특히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시고, 재미있어서 신나게 일하십니다. 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요. 옛것을 잘 지켜가면서 이 시대의 멋을 항상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이 배우고요. 저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밥 잘 먹고 그날 할 수 있는 작업부터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팔불출이 된다”는 이야기를 보고 미소를 감출 수 없었어요. 목공예 작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느껴져서 더욱 응원하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A. 예전에 한 소설가분께 제 필함을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책상에 올려두고 가만히 본다’ 고 편지를 주셨더라고요. 그 감동을 잊지 못해요. 만드는 사람도 그러는데, 받은 사람도 그렇구나 싶어서요. 완성하고 나면 정말 예쁠때가 있거든요. 더 바라보고 싶은데, 대부분 서둘러 보내드려야 하고…. 아직 시도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패턴 상감을 활용한 가구를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구 전시도 계획 중이고요. 또 전통 가구를 공부하고 있는 만큼 제 작업에 그런 요소들이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Q. 전시를 찾는 관람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A. 가만히 나무의 결을 감상하다가 뚜껑도 여닫아보고, 달그락거리는 느낌, 나무의 질감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대부분 어떤 물건을 올려두거나 넣어두는 기물이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올려둘까 넣어둘까 상상하면서 감상하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지 작가의 개인전 《Loving Imperfections》는 2025년 2월 28일부터 3월 16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