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볕이 무르익은 10월, '달'을 매개로 이어진 김규&수오 작가님을 핸들위드케어에서 만나보았습니다. 서울과 제주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멋진 호흡을 보여준 두 분의 작업 스토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목기와 사진이라는 각기 다른 작업 방식부터 자연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 두 작가의 깊고 넓은 세계를 함께 나눠봅니다. Q. COVID19로 인해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고 소란한 요즘이에요. 최근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본인만의 루틴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수오 작가님께서는 제주 서귀포에 기반을 두고 생활하시지요?수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제주의 지인들을 보지 못한 지 두 계절을 보내며 섬 안의 섬처럼 밀봉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주에서의 일과라 하면 프리랜서인 남편, 고양이 두 마리와의 일상과 작업실을 중심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2년 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식습관을 간소화 하고, 건강을 살피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몸의 균형을 위해 새벽 명상과 요가로 하루를 열고 집중을 위해 백단향을 매일 사릅니다. 컨디션에 따라 흙으로 그릇이나 오브제를 더디게 만들고요. 최근에는 작업 의뢰가 들어와 사진 작업을 하느라 산책을 겸하며 많은 시간을 숲에서 보내고 있습니다.김규: 가을에 접어들면서 운동과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동작과 비슷한 운동을 간단히 하고, 궁금했던 책을 필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혹시나 늦잠을 자게 되면 취침 전에라도 꼭 하고 잠들고요. 전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주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요즘은 전시장과 작업실을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Q. 듀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개인전과는 또 다른 마음가짐이 드셨을 듯합니다. 호흡을 맞추기 위해 특별히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을까요? 수오 작가님은 전시가 시작되기 전, 제주에서 달 항아리를 촬영하셨다고 들었어요. 수오: 개인적으로 조화와 어울림이라는 단어에 애정을 가집니다. 사진과는 물성이 다른 흙이나 나무를 소재로 한 작업물의 연결고리를 늘 염두에 두는 편이고요. 2년 정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김규 작가의 작업물의 방향성이 신통하게도 많이 닮아 있어 편하게 2인전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제주의 원시적인 질감과 거친 흔적을 같이 담고자 했고, 계곡이나 곶자왈, 해변과 목기의 표정이 맞닿으니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오래 전부터 뿌리를 내린 나무 같다고나 할까요. 김규: 수오 작가님의 작품과 조화롭게 구성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행히 작가님과 제 작업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걱정은 없었고요. 제 작업에 충실했습니다. Q. 작업의 중심이 되는 제주와 서울의 밀플라토 공방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각각 어떤 곳인가요?수오: 제주도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삶이 채워지고 있는 곳이에요. 계기라면, 그저 이곳이 저의 집이기 때문에 작업의 중심이 된 것이고요. 섬이 가진 특별함은 열거하자면 너무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화산섬이라는 고유성, 고립되어 있는 형태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용암과 물, 바람이 만들어 낸 숨골과 풍혈 등 지질에 관한 모든 것들이 영감을 주는 소재입니다.김규: 공방은 제 작업 위주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끔 동네 분들이 오가며 제작이나 수리를 의뢰하시곤 하는데, 되도록 제작해 드리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 수리나 의자 다리 길이 조정, 불상 좌대 제작 등 집에서 일상적으로 쓰거나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고 싶어 하시거든요. 저 역시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기꺼이 작업해드리려고 해요. Q. 이번 전시에서 김규 작가님은 달 항아리를, 수오 작가님은 다중노출로 촬영한 사진을 선보이셨어요. 작업의 계기와 방식에 대해 들려주세요. 김규: 평소 도자로 된 달 항아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달을 좋아해왔어요. 다만 도자보다 좀더 온기가 느껴지는 달 항아리를 품에 안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것이 나무 달 항아리로 이어진 듯해요. 처음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나무 달 항아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고 2018년부터 하나씩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수오: 처음에는 시리즈로 매일 같은 장소와 시간에 일몰을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2년 정도 지속한 촬영을 그만두었죠. 객관적인 기록과 재현성을 가진 사진보다는 제가 가진 느낌으로 섬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관광지 제주도가 아닌 섬이 가진 순환의 모양새를 담고 싶었지요.특히, 화산섬의 순환과 균형의 모양새를 어떤 방법으로 담을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여러 작업 중 <온도의 질감>이라는 타이틀이 바로 다중노출 방식으로 작업하는 프로젝트이고요. 앞서 말한 순환의 형태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늘, 바다, 오름, 숲, 계곡, 곤충, 이끼 등 이 모든 것들과 일체가 되어 현상으로 느껴지거든요. 엇갈리고 맞물리는 비가시적인 느낌을 다중촬영이라는 큰 맥락을 유지하며 결이 다른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김규 작가님께선 작업 도중에 시행착오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작품의 전반적인 제작 과정은 어떤가요?김규: 보통 작품마다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완성돼요. 작품의 크기와 제작 기간이 꼭 비례하지도 않고요. 나무에 따라 건조의 정도도 달라지죠. 건조를 완전히 마친 뒤 작업에 들어가는가 하면, 젖은 상태의 나무로 시작할 때도 있어요. 그런 경우엔 손이 젖을 정도로 물이 튀는데 중간중간 말려가며 완성해갑니다. 물론, 중간에 포기한 적도 많아요. 마음에 들지 않아 작업실 한편에 내버려두기도 하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몇 개월 지나 다시 꺼냈을 때 달리 보이는 순간이 있더군요. 그 사이 제 실력이 늘었을 수도, 저도 모르는 사이 나무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죠. Q. 주요 소재인 나무는 주로 어디서 얻으시는지요? 우연히 나무를 발견한 순간의 느낌, 작품의 소재로써 나무의 매력도 궁금합니다.김규: 사실 어디서든 나무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특히 도시를 오갈 때 제 눈에는 나무밖에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일단 나무를 가져올 때도 많았는데, 워낙 쌓인 나무가 많아서(웃음). 요즘은 제재소를 통해 통나무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유를 설명 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나무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다양한 자연 소재가 있지만 금속이나 돌은 물성이 차갑고 접근이 어렵더라고요. 반면 나무는 사람과 매우 유사한 존재 같아요. 나서 자라고, 죽는 일련의 과정뿐 아니라 서 있는 모습도 사람과 닮았고요. Q. 특별히 더 마음이 기우는 수종도 있나요? 김규: 가급적 우리나라에서 자란 나무를 사용하려 합니다. 나무는 나무가 자라는 곳의 흙, 물, 공기 같은 요소들로 구성되는데, 저 역시 그 나무들과 동일한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달 항아리나 한반도에서 출토된 토기를 모티브로 하는 작업에서 한국의 나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요. 이번 전시의 중심에 있는 달 항아리와 같이 오동나무, 느티나무, 사과나무 등을 선호하긴 하지만 나무의 결이 너무 화려한 것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Q. 수오 작가님의 작업으로 대화를 좀더 이어가볼게요. 작가님께선 다중노출 작업 시 어떤 기준으로 풍경이나 피사체를 결정하시나요?수오: 시리즈의 내용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곤 해요. 피사체를 먼저 정해 놓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섬이 가진 궤적이 있는데, 특정 시간대에 빛과 만나 특유의 느낌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 타이밍이 맞으면 섬에서의 어떤 피사체든 소재가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직관이 개입되어 그때그때마다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요. Q. 사진의 주인공으로 제주의 동식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자연물을 찍기 위해선 인내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실제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수오: 어떤 피사체든 인내와 기다림, 관찰력이 필요해요. 직박구리, 방울새, 동박새, 곤충 그리고 노루나 꿩 등을 촬영할 때는 오랜 촬영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을 방해하지 않은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고요. 동네에 귤 농장이 많아 소금기 묻은 해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어요. 그 덕분에 다양한 종의 새와 곤충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사진에 담기도 합니다. Q. 자연을 담되, 단순한 풍경 사진으로 남지 않기 위한 작가님만의 철학과 기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수오: 음악으로 따지자면 가락이 담백하고 박자는 느슨하며 음이 많지 않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많은 시도와 실험을 하며 스스로 묻고 고민하며 답을 찾고 싶어요. 오랜 시간 중심이 흔들리지 않은 작업이 모여 말하고자 하는 방향은 언제나 한결같길 원합니다. 작업뿐만 아니라 삶 또한 해당되는 것 같아요. Q. 전시에서 선보이신 Cyanotype(청사진법) 또한 인상적입니다. 기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이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으셨나요? 수오: 과거의 사진 프로세스 중 하나인 Cyanotype 은 직접 만든 흑백 네가티브 필름이나 식물을 감광유제를 바른 인화지 위에 올려 햇빛에 노광한 뒤 수세를 하는 기법입니다. 비은염 프린트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익숙해질수록 명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지요. 고전 프린트는 자연물의 작은 단위를 본질 그대로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방법이에요. 자연물의 작은 입자와 제가 바라보는 순환의 모양새가 닮아 있어 식물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채집을 시작했습니다. Q. 김규 작가님의 작업노트 중 “나무를 통해 흔들리고 불완전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 주는 통쾌한 감정”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달 항아리와 균열이 생긴 나무가 만나 형성된 미묘한 긴장감이 바로 이것구나 싶기도 했고요.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정서나 메시지가 있으셨나요?김규: 제 작품을 보면서 편안한 마음을 느끼는 동시에 불완전한 상태가 주는 통쾌함도 함께 느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의 삶 역시 태어날 때는 깨끗하지만 살아가면서 주름이 지고, 내면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잖아요. 마치 터지고 갈라지는 나무처럼요. 한편, 제 작업을 마주하는 분들이 작품을 통해 어둠 속의 촛불이 주는 정도의 밝기와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습니다. Q. 전시 타이틀이기도 한 ‘달’이 두 분의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각자에게 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수오: 달은 제가 어디에 있든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요. 달을 보면 품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하고 따뜻하게 느껴지거든요. <월하정원>이라는 타이틀로 섬의 풍경과 달을 중첩한 작업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듯 빛나는 달의 얼굴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닮아 있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김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달을 보는 것을 즐겨해왔어요. 이런 마음은 비단 저만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공통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달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존재하는 친구가 아닐까요. Q. 마지막으로 현재 몰두 중인 작업 주제나 앞으로 계획된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수오: 숲은 삶과 죽음이 공존할 때 건강하다고 하죠. 죽은 생명체, 떨어진 나뭇잎의 거름은 다른 생명체를 위한 서식처가 되어 줍니다. 풍화작용으로 변하는 현무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껍질에 흔적처럼 남은 이끼와 곰팡이의 모습,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시든 식물의 모습을 중첩하여 생성, 성장, 소멸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규: ‘신목기시대’라는 주제로 달 항아리를 비롯해 토기를 모티브로 한 목기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저는 석기 시대 이전에 목기 시대가 있었으리라 상상하는데요, 결핍과 미몽의 시대가 아닌 지금의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자유롭고 평등한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상상 속에서 신목기시대의 도래가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전해주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의 가치를 탐구해나가려 합니다. 《달의 원형原型 - 김규, 수오 작품전》은 온라인 스토어를 비롯해 한남동 handle witch care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현재 전시 둘러 보기☞ 작품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