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과 겨울의 길목에서 맞이하는 11월, 전시를 앞두고 DEETE의 정동훈 작가와 서면으로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공예품과 제품을 오가며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해 온 과정, 작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로웠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작가님과 〈DEETE〉의 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섬세한 태도와 모양’ 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Studio DEETE〉를 운영하고 있는 정동훈 이라고 합니다. 디태는 원목의 질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차도구들과 목가구들을 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디태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에서, 섬세함 마음과 디자인의 디테일들을 지칭하는 것에서, 그리고 제 이름의 이니셜과 형태를 일컫는 모양 태(㑷)를 합친 뜻을 갖고 있습니다. Q. 작업실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만의 작업 루틴이 있으신지, 휴식을 위해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A. 보통 주중의 일과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에 시작하여 해가 지는 6시~7시 경 작업을 끝내려 합니다. 날카로운 도구를 다루는 작업이 주를 이루기에 최대한 낮에만 기계를 사용하는 루틴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지만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스튜디오 생활이다보니 작업 외에도 해야할 일들이 정말 많더군요. 주중에 못다한 일들을 보완하고자 토요일은 스스로 ‘welcome day’ 라고 말하면서 작업실에서 조금 느슨한 하루를 보냅니다. 작업노트도 끄적이고, 못다한 사무 일들을 처리하기도 하고, 스튜디오를 구경하고자 하는 분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종종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느슨한 시간을 통해 노동의 현장인 작업실에 조금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처음 목공예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A. 졸업 이후에 문래동에서 친구들과 ‘413’이라는 공동작업실을 운영했었어요. 조각을 전공했고 설치미술이나 개념적인 작업들에 관심이 많아 현대미술과 관련된 일들을 꽤나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때때로 즐거움과 실망을 겪어가며 직업으로서 “예술가”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었습니다. 먼 미래와 10여년 뒤에 삶을 생각해보며 관념적인 작업보다는 실용적이고 손에 닿는 것들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설치작업 때 했던 목공 작업의 매력이 떠올랐습니다.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후로 약 9년. 여러 곳을 거친 뒤 지금은 다시 작품과 상품의 경계에 있는 물건들을 만들고 있네요. Q. 전시 제목인 《우리의 일부가 되어》를 직접 지어주셨어요. 타이틀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전시 타이틀을 생각하며 현재 ‘내가 물건을 만들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만드는 것들은 어떤 사물인가’ 고민을 해보게 되더군요. 디태의 물건과 가구는 결국 사람에 의해 사용되고, 사용자의 생활에 녹아들어야 하는 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 배경, 여백, 균형,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인공으로서의 물건보다는 공간과 목적, 다른 기물과 균형을 맞추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에 기준을 둡니다. 단독으로 존재했을때는 다소 밋밋한 느낌에 무언가를 더해볼까도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항상 하나를 덜어내어 함께 놓일 물건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편입니다. 전시 제목도 디태의 이런 지향을 떠올리며 지어보았습니다. Q. 작년, 티더블유엘에서는 단독 에디션을 포함한 디태의 차판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절제된 미감이 있으면서도 불필요한 긴장감을 주지 않는 점, 정교한 디테일과 비례미를 갖추었지만 차가운 인상을 주지 않는 ‘균형감’이 인상깊었어요.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구조와 제품간 모듈화는 디태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현재와 같은 스타일의 작업을 전개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균형감. 의식하고 했던 것은 아닌데 이렇게 콕 집어 말씀해주시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어요. 어떠한 선택과 결정을 내릴 때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하는 부분들을 경계합니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만들 때에도,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부분 그런 성향이 있어요. 건축물의 형상을 의도하지만 않지만 기물을 사용하는데 있어 손의 감각을 비롯하여 물성을 다루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 구조를 설계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의 질서 안에서 사용자가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열어두어 스스로만의 물건을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Q. 이번 전시에서는 차판 뿐 아니라 차탁, 선반 다구장과 차 도구함, 티 테이블까지 폭넓은 스케일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A. 오랜 시간동안 생활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해왔는데 디태를 찾아주시는 일들이 다구와 관련된 소품들이 많다보니 소품 위주로 작업을 많이 전개해온 듯 합니다. 언젠가 이름을 단 테이블을 디자인해서 만들게 된다면 아주 간결한 덩어리의 테이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었어요. 새롭게 선보이는 티&다이닝 테이블은 검고 반듯한 덩어리의 목재가 자연스러운 목리의 결을 품은 채, 테이블 앞에서의 행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차분한 미감을 보여줍니다. 여러 각도에서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구함은 Dan Tea board 와의 호환성, 다구함을 사용하지 않을 때의 형상, 내부에 들어갈 다기와 차도구를 위한 사이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구함 내부에 들어갈 다기와 차도구의 평균적인 사이즈를 고려해야 했는데,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되 각각의 차 기물을 수납할 때 공간이 많이 남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밀하게 치수를 조정할 일들이 많았어요. 용도와 구성에 따라서 다양한 얼굴과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 매력인 듯 합니다. Q. 작품 설명 중, ‘처마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곡선’, ‘ 단청의 채색기법인 호분을 사용한 백색’과 같은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디태의 목공예 기물은 모던하고 현대적인 인상으로 다가왔었는데, 한옥과 궁과 같은 전통 건축물의 디테일에 영감을 받으신 점이 흥미로웠어요. 관련해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A. 처음부터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목리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나무를 채색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옛 표현기법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나무를 태워 결을 돋보이게 한다거나, 원하는 나뭇결을 위해 나무를 켜거나, 나무의 성질에 맞추어 곧은결과 무늬결을 분류하는 방법 등 전통목가구에서 사용하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기물을 바르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방법들을 알아가게 되면서부터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나무 물건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된 것 같아요. 한국적인 형태와 상징보다는 한국적인 색감과 정서, 질감과 의식 같은 것에 좀 더 관심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처마보다는 은은한 곡선에, 단청의 장식이나 문양보다는 호분이라는 재료의 질감과 빛깔에서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보통 원목 마감에는 원목 고유의 색을 살리기 위해 내추럴 오일마감을 주로 하곤 하는데, 방수나 방충 같은 실용적인 사용성 때문에 칠에 관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혼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Q. 디태의 작업을 보며 작가님이 차와 차생활을 좋아하는 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일상에서도 차를 종종 즐기시고 계실까요? 작가님이 가장 애용하는 디태의 차도구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지네요.A. 차도구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대용차나 홍차 위주의 차를 즐겨 먹었다면 현재는 백차나 숙차 등 폭넓게 차를 즐기고 있습니다. 가끔 아내와 같이 유명한 찻집들을 찾아다니며 찻자리를 가지기도 하는데 팽주의 손놀림과 애장품들,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에서 새로운 경험과 인상을 받곤 합니다. 집에서는 주로 Tea board L 사이즈나 M 사이즈를 주로 활용하고, 스튜디오에서 손님을 맞이할때는 XL- Flat 사이즈의 차판을 주로 사용합니다. 상부의 면적이 넓어 이것저것 놓고 사용하기에 부담이 없기도 하고 큰 사이즈에 차판에서 차를 마시면 차와 대화에 집중하기에 좋더군요.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물건들을 사용하고 경험하는 것만큼 도움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물을 곁에 두고 새롭게 보려 하고 있습니다. Q. 작업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 A. 작업의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차와 관련된 물건을 만들다보니 차로 인해 알게된 인연들이 제법 많아졌어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 응원하고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차도구 중에 ‘다우’ 라는 것처럼, 마치 생활의 곁에 두고 서로를 기억하는 기운을 받는 듯 합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보통의 관계에서 다소 낯가림이나 경계심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차를 매개로 만난 분들에게선 그런 느낌이 없어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관람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A. 전시에 함께하는 다양한 다기를 편하게 놓아보고 소꿉장난 하듯이 여기저기 배치해가며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찻잔 하나, 찻 잎 하나, 찻자리라는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는 데에 디태가 좋은 도화지로의 쓰임을 다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Q. 전시가 끝나면 곧 연말을 맞이합니다. 2025년, 작가님이 계획하신 일들이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A. 한 해동안 계획했던 일들이 연말에 많이 몰려 있더라구요. 하나씩 해결해나간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디태의 작업들은 곧은 선과 면, 그림자의 대비의 작업들이 주를 이루었어요. 앞으로는 유선형과 손 맛을 가미한 작업들도 선보이고자 합니다. 연구하고 실험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섬세한 마음으로 모양을 다듬어 볼 계획입니다. DEETE의 작품전 《우리의 일부가 되어》는 2024년 11월 8일부터 11월 24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