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을 지나 녹음이 짙어지고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7월, 듀오 작품전 《여름 방학 放學》 을 앞두고 임정주 작가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가볍고 밝은 여름의 빛을 떠올리며 작업한 전시작과 특별한 협업 과정까지, 흥미로웠던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저는 나무를 주 소재로 기능과 조형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임정주 작가입니다. Q. 작업실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대게 작업실에서의 하루는 오자마자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눈에 보이는 이전에 했던 작업들과 도구들을 정리하고 시작합니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 가면 책과 필통 정리를 했는데 아직 그 습관이 남아 있어 그러는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하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는 편은 아니고 집중해서 한번에 4-5시간정도 쭉 먼지를 뒤집어 쓰며 오롯이 조각하고, 샌딩하고 끝나자마자 옷갈아입고 탈출하는 편입니다. Q.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런던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뒤 현재 나무 소재에 집중한 작업을 전개하고 계세요. 기능과 쓰임이 명확한 초반 작업에서 ‘목적과 기능을 배제한’ 오브제를 소개한 최근의 전시까지. 기획과 구상, 제작을 아우르는 작업적 행보가 매우 폭넓게 느껴졌습니다. 작업을 전개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 작업 방향에서 작가님만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A. 모든 작업은 궁금증으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행동,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서 ‘왜 그런것일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머리와 노트 속에 끝없이 적어내려가고, 그 생각이 다른 상황과 만나 데이터가 쌓이게 될 때 기획, 제작, 재료, 도구, 조형, 기능 등 다양한 방향 중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의 방법을 정합니다. 하나의 방법을 찾기보다 연구와 시도, 실험을 통해 다양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Q. 검은색을 메인으로 한 3부작 전시 《BLACK PART》 와 다르게, 이번 작품은 편백나무 본연의 밝고 화사한 색감에 집중하셨다고 하셨어요. 일부 오브제는 표면의 색감이 변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일이 아닌 비누 도장으로 마감하셨고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주 떠올리신 이미지나 모티브가 된 것이 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A. 여름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2020년 열었던 개인전에서도 여름의 색을 구현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는 오히려 ‘여름은 빛이 가장 강한 계절이기에 그림자의 명암이 가장 강하고, 그 그림자의 색이 여름의 색이지 않을까’ 하는 정의를 내리고 작업을 진행했어요. 마치 마을의 큰 느티나무 아래 그늘 밑의 평상에 누운 느낌이랄까요. 그에 반해 이번 작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밝고 화사한 여름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2020년에는 그늘을 보았다면 이번에 바라본 것은 느티나무 잎사귀 사이로 오는 눈부신 빛에 가깝습니다. 방법적으로는 밝은 색감의 편백나무를 소재로 선택하고, 마감 또한 오일은 목재 색을 짙게 하기에 최대한 편백나무 색을 살릴 수 있는 비누 마감을 선택했어요. 조형이나 기능적인 부분에서도 가볍게 기분을 풀어 줄 수 있는 방향을 추구했습니다. 쉴 수 있는 벤치, 놀 수 있는 목마,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코너장처럼요. 긴장을 풀고 느슨한 감각으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물건으로 구성했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 작업 외에 허성자 작가와 협업하신 특별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허성자 작가님과는 과거 문화유산 보존 단체인 예올에서 전통 장인과 젊은 공예인으로 나란히 선정되시기도 했어요. 협업 작품의 구조나 조형적인 요소를 디자인하셨는데, 함께 작업하시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A. 이번 전시에서는 허성자 작가님과의 지난 전시에서 함께하지 못했던 부분을 풀고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전시에서 허성자 선생님의 작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완초가 가지는 평면적 소재감, 그리고 그 소재가 가질 수 있는 조형성이었어요. 이를 극대화하고 잘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디자인 해보았습니다. 코너장인 「트롤리」 의 문짝, 트레이의 윗 상판, 목마의 안장, 벤치의 방석 등 완초가 가지는 평면성과 입체성을 두드러 질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저는 주로 나무를 다루는 작업들을 많이 하지만 다른 소재에 대한 관심이 많기에 전시를 준비하며 허성자 선생님과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마감이 되며 그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더 아름다운 모습이 나올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협업은 항상 서로의 모르는 부분을 알아가면서 작품의 확장성이 더 넓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더 궁금하고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앞으로 하게 될 협업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협업 작품을 보면 집의 공간에서 방치되는 코너를 활용할 수 있는 삼각 형태의 트롤리, 양감을 살리고 곡선부 디테일에 변화를 준 벤치 외에 장난감의 요소가 있는 목마 오브제가 있습니다. 어떤 작업은 디자인적 요소, 조형성에 바로 시선이 가고 어떤 작품은 기능과 의도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게 되어요. 작업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나 「목마」 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작은 피규어나 장난감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직도 조금씩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것들을 모으다 보면 꼭 한번씩 그 물건을 나무로 표현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중 아이들이 타는 목마를 보면서 제가 조형적으로 표현한 목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가장 힘들었어요. 목마를 디자인하고 그 사이즈에 맞는 목재를 찾는데, 집성이 아닌 한덩어리의 나무로 만들고자 하니 편백나무 중에 이렇게 큰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5-6군데의 목재상에서 안쪽의 나무들을 들추고 들춰 겨우 하나를 찾아 유레카를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Q. 두 작가님의 작업을 보며,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냈던 여름 방학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집의 처마와 오래된 나무가 드리운 그늘, 그 아래 시원한 마루 바닥의 촉감, 매미 소리나 비오는 날 듣던 개구리 울음 같은 것들이요. 평소 작가님만의 휴식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A. 저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런 것들을 가장 많이 떠올렸습니다. 저는 보통 휴식할 때 자전거를 타거나, 와이프와 반려견 오요와 함께 산책하는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일을 많이 할 때는 머리를 비워야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한때는 아무 생각없이 무한정 핸드폰만 보던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최근엔 핸드폰도, 다른 생각도 못하는 산책을 더 좋아합니다. Q. 전시를 찾으시는 관람객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A. 기존의 무거운 작업보다 밝고 화사한 느낌의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또 언제 이렇게 밝게 해볼까 싶을 정도로 즐겁게 작업을 했던 기억만이 남아있습니다. 전시를 보러오신 모든 분들께 여름의 밝은 장면으로 다가가는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Q.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계획하신 일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연말에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 하나 있는데, 최근 모든 물건이 태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언제부터 의자는 다리가 네 개였고 등받이가 있었으며 앉는 높이는 왜 430인지, 테이블은 언제부터 누가 테이블이라고 불렀는지 같은 조형과 실질적인 사이즈에 가변성을 두어 전시하여 어디서부터 의자이고 어디까지는 의자라고 불릴 수 없는지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스케치 단계이긴 하지만 2024년 연말 혹은 2025년 연초에는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성자&임정주 작품전 《여름 방학 放學》은 2024년 8월 4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